좋아하는 詩

맨발 - 문태준

효림♡ 2008. 12. 18. 08:12

*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
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
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ㅡ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ㅡ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 문태준시집[맨발]-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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