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분 - 문태준
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흘러 흘러갔어라
먼 산 눈이 녹는 동안의 시간이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풀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풀이 와
어떤 곳으로부터 와
풀은 와서 돋고
몸이 커지고 스스로
풀꽃을 피우고 문득
여인이 되었어라
수심(愁心)을 들고 바람 속에 흔들리거나
내가 돌아앉으면
눈물을 달고 어룽어룽 내 뒤에 서 있었어라
어디로부터 왔느냐
묻지는 않았으니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묻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앞서고 앞서서 가거나
늦추고 늦추어서 갈 뿐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서로에게 구름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애인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그러하니 사랑이여
우리가 만나는 동안은
샘물을 길어서
주름을 메우고
서로의 목을 축여다오
* 문태준시집[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