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나무들 - 조이스 킬머

효림♡ 2009. 3. 18. 08:02

* 간격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 나무 - 장서언

가지에 피는 꽃이란 꽃들은

나무가 하는 사랑의 연습

 

떨어질 꽃들 떨어지고

이제 푸르른 잎새마다 저렇듯이 퍼렇게 사랑이 물들었으나

나무는 깊숙이 침묵하게 마련이오

 

불다 마는 것이 바람이라

시시로 부는 바람에 나무의 마음은 아하 안타까워

차라리 나무는 벼락을 쳐 달라 하오

 

체념 속에 자라난 나무는 자꾸 퍼렇게 자라나기만 하고

참새 재작이는 고요한 아침이더니

오늘은 가는 비 내리는 오후 *

 

* 숲 -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 나무를 위하여 - 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추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 *

* 신경림시집[쓰러진 자의 꿈]-창비,1993

 

* 나무 - 이형기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 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 자귀나무 아래까지만 -여름 저녁의 편지 - 권현형 

이름 모를 나무 아래 이르렀을 때 그는 가섭처럼 미소 지으며 큰 키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저게 자귀야"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하는 여름 저녁 허공에 붉은 부챗살 모양의 꽃깃을 치고 있는 자귀는 귀기(鬼氣)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손가락에 그 묘한 꽃들이 송이송이 길들여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무에 홀려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그 다음 풍경을 더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기까지만 자귀나무까지만 오래오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여름 저녁은

그가 아니라도 자귀가 아니라도 무엇인가에 마음이 홀려 흘러가기 쉬운 때문입니다 *

* 황동규[즐거운 편지]-휴먼앤북스

 

* 나무와 하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빗속에서 소요하던 한 그루의 나무,
우리를 지나쳐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과수원의 찌르레기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갈무리해야 한다.

빗줄기 잦아들자 나무도 걸음을 멈춘다.
맑은 밤 깊은 적막 속의 천지에
눈꽃 피어나는 순간을 고대하는 우리처럼

나무는 고요히 기다린다. *

 

* 나무들 - 조이스 킬머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를 볼 수는
결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네
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에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종일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나무
여름에 자신의 머리 위에
울새 둥지를 허락하는 나무
가슴엔 눈이 쌓이지만
비와 친밀하게 사는 나무
시는 나와 같은 바보들이 짓지만
나무는 오직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다네 *
 

* TREES -Joyce Kilmer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A poem lovely as a tree.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sed
Against the earth’s sweet-flowing breast;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Upon whose bosom snow has lain;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