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간다 - 김억
밤이도다
봄이도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 나의 사랑은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수면(水面)에
해쑥 어리운
그림자 같지요
고적도 하게
나의 사랑은
어두운 밤날에
떨어져 도는
낙엽과 같지요
소리도 없이 *
* 오다 가다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뒷산은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앞바단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 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 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리 포구 산 너먼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과 논다
수로(水路) 천리 먼먼 길
왜 온 줄 아나
예전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
* 연분홍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듭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워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울며 돌아섭니다 *
* 봄바람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밪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들이외다.
* 비
포구십리(浦口十里)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 한나절을
모래알만 울려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漁泳島)라 갈매기 떼도
지차귀가 촉촉히 젖어
너훌너훌 날아를 들고
자취 없는 물길 삼백리
배를 타면 어데를 가노
남포(南浦) 사공 이내 낭군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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