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가시나무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 나태주

효림♡ 2009. 4. 14. 08:03

* 가시나무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 나태주

 

* 

랑하는 사람아, 너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변방의 둘레를 돌면서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까마득 짐작도 못할 것이다
겨울 저수지의 외곽길을 돌면서
맑은 물낯에 산을 한 채 비춰보고
겨울 흰 구름 몇 송이 띄워보고
볼우물 곱게 웃음 웃는 너의 얼굴 또한
그 물낯에 비춰보기도 하다가
이내 싱거워 돌멩이 하나 던져 깨드리고 마는
슬픈 나의 장난을 

**

솔바람 소리는 그늘조차 푸른빛이다
솔바람 소리의 그늘에 들면 옷깃에도
푸른 옥빛 물감이 들 것만 같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그만
포로소롬 옥빛 물감이 들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솔바람 소리 속에는
자수정빛 네 눈물 비린내 스며 있다
솔바람 소리 속에는
비릿한 네 속살 내음새 묻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조차 그만
눈물 비린내에 스미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

나는 지금도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내음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살얼음에 버려진 골목길 저만큼
네모난 창문의 방안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는
빨강 치마 흰버선 속의 따스한 너의 맨발을 찾아서
네 열게 발가락의 잘 다듬어진 발톱들 속으로

지금도 나는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송이 꺾어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처마 밑에 정갈히 내건 한 초롱
네 처녀의 등불을 찾아서
네 이쁜 배꼽의 한 접시 목마름 속으로
기뻐서 지줄대는 네 실핏줄의 노래들 속으로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이여 나와 가자오 - 이호우  (0) 2009.04.15
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0) 2009.04.15
게으름 연습 - 나태주   (0) 2009.04.14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 - 나태주  (0) 2009.04.14
개심사 - 나태주  (0) 2009.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