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얼레지 - 황학주

효림♡ 2009. 4. 17. 08:04

* 얼레지 - 황학주  

 

적멸보궁 하산 길에 훔쳐온 얼레지꽃 피자

외딴 파도 소리 베란다에 환하게 들었다

밤새도록 비벼 넣은 밤물결을 쓰다듬기만 하는

얼레지, 내 눈을 피한 것이었는지 바람난 흔적이 없다 

 

다락다락 조르지 않아도

내 살 속으로 한 삽 다 들어온다 

 

나를 그대 옆으로 바짝 파 옮기는

숙일수록 뒤집혀 다른 날개가 되는

얼레지, 적멸궁을 가만히 잘 빠져나왔네 

 

* 벨기에의 흰달 - 황학주

 

정거장마다

지붕 위에서 사라지는

달이 기다리고 

어딜 가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달에 가 있다

달이 물방울처럼 아름다운

브뤼셀은 가까워 오는가

정말 生에 가까운 것이 오려나


당신은 참 좋은 사람예요

갑자기 열차 창 쪽에서

선이 바스러진 달이

말한다

죄를 사용했던 사랑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다시 태어나면

여자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남자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는 달이

지붕 밑에 온기를 쭈그리고

눈을 붙인다

 

화려한 땅을 묻어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향해 떴던  

달은 뒤통수처럼 고요하다


브뤼셀을 한 정거장

지나쳐버린 늦은 밤

우리에게 뜻밖에 되돌아갈 곳이 생겼다 *

 

* 노랑꼬리 연 - 황학주

노랑꼬리 달린 연을 안고
기차로 퇴근을 한다 그것은 흘러내린 별이었던 것 같다
때론 발등 근처에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은 손을 내밀 때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니까
길에 떨어진 거친 숨소리가 깜박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아물면서도 가고 덧나면서도 가는

그런 밤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할지
네게 물어도 될 것 같았다

도착하고 있거나 잠시 후에 발차하는
기차에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런 내 퇴근은 날마다 멀고 살이 외로워
노랑꼬리 연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어디에 있든 너를 지나칠 수 없는 기차로 갔던 것 같다
너의 말 한마디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댓살이 내 가슴에도 생겼다
꼬리를 자르면서라도 사랑은 네게 가야 했으니까
그것은 막막한 입맞춤 위를 기어오르는 별이었던 것 같다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운명은
오래오래 기억하다 해발 가장 높은 추전역 같은 데 내려주어야 한다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안 좋은 시절
바람 속으로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

네게로 가는 별, 댓살 하나에 온몸 의지한
노랑꼬리 연 하나 바람 위로 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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