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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의 노래 - 서정주

효림♡ 2009. 4. 23. 08:05

* [거시기]의 노래 - 서정주

 

 八字 사난 [거시기]가 옛날 옛적에
 大國으로 朝貢가는 뱃사공으로
 시험봐서 뽑히어 배타고 갔네.
 삐그덕 삐그덕 창피하지만
 아무렴 세때 밥도 얻어먹으며.....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렇지만 요만큼한 八字에다도
 바다는 잔잔키만 하지도 안해,
 어디만큼 가다가는 暴風을 만나
 거 있거라 으릉대는 波濤에 몰려
 아무데나 뵈는 섬에 배를 대었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제아무리 시장한 龍王이라도
 한 사람만 잡수시면 요기될 테니
 제비 뽑아 누구 하나 바치고 빌자]
 사공들은 작정하고 제비 뽑는데
 거시기가 또 걸렸네. 불쌍한 녀석.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비는 것도 효력이 있던 때였지.
 바다는 잔잔해져 배는 떠나고
 거시기만 혼자서 섬에 남았네.
 먹을테면 먹어봐라 힘줄 돋구며
 이왕이면 버텨보자 버티어 섰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龍王이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ㅡ
 [우리보다 센 魔鬼가, 우리 食口를
 다 잡아먹고, 나와 딸만 겨우 남았다.
 그대는 활 잘 쏘는 花郞 아닌가?
 우리 다음은 네 차례니 맘대로 해라]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거시기는 이판사판 생각을 했네 ㅡ
 [힘 안 주고 물렁물렁 먹히기 보다
 힘 다 하다 덩그렇게 죽는 게 낫다]
 그래서 그들에게 魔鬼가 오자
 젖먹이 힘 다 해서 활줄 당겼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렇거면 맞칠 수도 있기는 있지.
 어째서 안 맞기만 하고 말손가?
 배내기 때 힘까지 모두 합쳐서
 거시기가 쏜 화살이 魔鬼 맞쳤네.
 어쩌다가 運좋게시리 魔鬼 맞쳤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래설랑 그 賞으로 龍王의 딸 얻어
 가슴팍에 꽃가지 끼리인듯이
 끼리고 살았다네, 오손 ㅡ 도손.
 사난 八字 上八字로 오손 ㅡ 도손.
 마누라도 없갔느냐, 오손 ㅡ 도손.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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