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효림♡ 2009. 4. 23. 08:13

*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 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었

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닥 칠해

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

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 이정록  (0) 2009.04.29
대통밥 - 이정록  (0) 2009.04.29
[거시기]의 노래 - 서정주  (0) 2009.04.23
新綠 - 서정주  (0) 2009.04.23
울기는 쉽지 - 루이스 휘른베르크  (0) 200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