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침 - 이정하
커피 물을 끓이는 시간만이라도
당신에게 놓여 있고 싶었습니다만
어김없이 난 또 수화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요 며칠
그대가 왜 그렇게 떠나갔는지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갔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한 것이 아닐까요
잠시라도 가만히 못 있고 수화기를 드는
커피 물을 끓이는 순간에도 당신을 생각하는
내 그런 열중이 당신을 너무 버겁게 한 건 아닐까요
너무 물을 많이 줘서 외려 말라 죽게 한
베란다의 화초처럼
여전히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고
늘 그런 것처럼 용건만 남기라는 낯모를 음성에
나는 아무 할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립니다
그런 순간에 커피 물은 다 끓어 넘치고
어느덧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주전자를 보며
어쩌면 내 그런 집착이 내 마음을 태우고
또 당신마저 다 타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은 새로 끓이면 되지만
내 가슴을 끓게 만들 사람은
당신 말고는 다시 없을 거란 생각에
당신이 또 보고 싶어졌습니다
내 입에 쓰게 고여오는 당신
나랑 커피 한 잔 안 하실래요?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이정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이정하 (0) | 2009.05.26 |
---|---|
꽃잎 - 이정하 (0) | 2009.05.26 |
안부 - 이정하 (0) | 2009.05.26 |
한 사람을 사랑했네 序 1~4 - 이정하 (0) | 2009.05.20 |
기다림의 나무 - 이정하 (0) | 2009.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