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마지막 편지 - 안도현

효림♡ 2009. 6. 3. 08:50

* 마지막 편지 - 안도현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도 가려 주리라

그대 진정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했었다는 그 말은 하지 말라
그대가 뜨락에 혼자 서 있더라도
등 뒤로 지는 잎들을

 내게 보여 주지는 말고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의 외딴 집 창문 덜컹댄다 해도
행여 내가 바람되어 두드리는 소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알 수 없는 그윽한 기쁨에
돌아앉아 몸을 떠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제 이 세상을 나누어 껴안고
우리는 괴로워하리라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거라 
 

 

* 안도현시집[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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