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맨 처음 연밥 한 알 속에 - 안도현

효림♡ 2009. 5. 31. 09:42

 

* 맨 처음 연밥 한 알 속에 - 안도현   

 

그대

연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가

한 송이 물 위로 떠오르며

또 한 송이 물 위로 떠오르며

둥둥

연꽃이 피는 소리 들어보았는가

그대 그때 두 귀를 열고 있었는가

 

이세상이 아파서

이세상의 모든 상처 위에

상처의 쓰라림 위에 쓰라림의 기쁨 위에

연꽃은 핀다네

뿌리를 뻗어 진흙땅을 다 껴안은 뒤에

꽃으로 하늘을 떠받들어 올리는 꽃

그리하여 그 향기로

아픈 세상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꽃

 

저 혼자 피는 꽃이 아니라네

여럿이 손잡고 한꺼번에 피는 꽃이

연꽃이라네

연못에서만 피는 꽃이 아니라네

그대의 두 눈동자 속에도 피는 꽃이

연꽃이라네

 

그대 연꽃이 두둥둥둥 피었다고

꽃만 보며 한나절 보내지는 않을 테지

외로운 우주의 중심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안간힘 속에

맨 처음 땅에 떨어진 연밥 한 알 속에

이미 피어 있는 연꽃도 보고 있을 테지

 

* 안도현시집[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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