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배를 밀며 - 장석남

효림♡ 2009. 6. 30. 08:02

*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

 

* 장석남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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