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배를 매며 - 장석남

효림♡ 2009. 6. 30. 08:03

* 배를 매며 -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앉아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 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 장석남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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