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갯벌 - 도종환

효림♡ 2009. 7. 3. 08:05

* 파도와 갯벌 사이 - 도종환

 

쌓았단 흩어 버리고 쌓았단 흩어 버립니다
모았다간 허물어 버리고 모았다간 허물어 버립니다
파도와 갯벌 사이에 찍은 흔적처럼
결국은 아무 것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났단 헤어지고 만났단 헤어집니다
구름과 하늘이 서로 만났던 자리처럼
결국은 깨끗이 비워 주고 갑니다

 

* 갯벌 - 도종환

 

탄식의 물소리들이 밀려오다가 쓰러진다
몸 한쪽이 길게 마비되어 가던 갯벌이
파도의 손끝을 잡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쏟아지는 돌무더기에 혼비백산하여 흩어진다
  
병든 파도소리를 철퍼덕 땅에 부리며
길 위에서 절하던 사람들은
절하며 뻘흙이 되어
뜨거운 포장
도로에 늘어붙던 사람들은
낮아지고 낮아져 끝내 말이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에서
날마다 우주까지 달려갔다가는
달빛을 끌고 돌아와 머무는 곳에
갯벌이 있다
바다와 육지가 가장 오래 만나고
가장 늦게 헤어지는 곳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을 품어 안고
거기 갯벌이 있다
  
백 몇 십 개의 산을 까뭉개
살아 숨쉬는 갯벌과 바다를 생매장하는
인간들의 교만하고 어리석은 몸짓을
파도와 게와 달과 산맥과 지구의 실핏줄

부들부들 떨면서 지켜보고 있다
인간이, 인간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탄식의 물소리들이 밀려오다가 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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