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직소폭포 - 안도현

효림♡ 2009. 7. 15. 07:50

* 직소폭포 - 안도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게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소 채찍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순간, 채찍 끝에 닿은 하늘이 쩍 갈라지며 적어도 구천 마리의 말이 푸른 비명을 내지르며 폭포 아래로 몰려올 것 같소


   그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십구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할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몰고 내변산 골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중이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굽 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

   

* 직소폭포 - 송종찬

 

  그대를 떠나 객지를 떠돈 지 십수 년 기다리라는 말 한마디 잘 드는 조선낫이 되었던 걸까. 푸른 억새 낫처럼 마음을 베고 홍화 붉게 물들어 손금을 적시는 내변산 직소폭포를 오르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리 헐겁지 않았는데 그대 발부리는 장맛비를 머금고 야윈 등줄기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 그 옛날 나 그대 얼굴 바로 볼 수 없어 내소사 뒷길에 올라 갈밭머리를 건너오는 바람결에 마음을 빗질하곤 했었네.

  누가 그대 가슴에 길을 냈는가. 어젯밤 장맛비 퍼부어 나 떠날 수 없게 하고  달을 건네주던  다리는 물에 잠겨 발목까지 차오르는 빗길, 찢긴 속곳처럼 불타 없어진 實相寺址 지나 물을 건너네. 그대 가까워질수록 엎드려 흐르는 목소리 들리고  맑은 눈 마주칠까 두려워 나 적송의 가지 뒤에 숨어 하늘만 보았네. 그때 옷고름 밖으로 쏟아지던 절규 그대는 그 가는 몸으로 이 땅의 욕망을 받아내고 있었네. *

 

*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시선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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