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효림♡ 2009. 6. 3. 08:52

                                  

 

*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열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 안도현시집[그리운 여우]-창비

 

* 화암사(花巖寺), 깨끗한 개 두 마리 - 안도현   
화암사 안마당에는
스님 모시고 노는 개 두마리가 있습니다
그 귀가 하도 맑고 깨끗해서
뒷산 다람쥐 도토리 굴리는 소리까지
훤히 다 듣습니다
간혹 귀 쫑긋 세우고 쌩 하니 달려갔다가는
소득 없이 터덜터덜 돌아올 때가 있는데
귓전에 닿는 소리에
덕지덕지 욕심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냥 한번 그래 본 것입니다
바람이, 일없이 풍경소리를 내는 물고기 꼬리를
그저 그냥 한번 툭 치고 가듯이 *

* 신정일엮음[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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