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홀한 결별 - 도종환
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놓는 은행나무에게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때 결별하는 은행나무 밑에서 이 음악이 완성되면 어긋나는 우리의 운명도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 같아서요
떡갈나무 잎 떨어져 날리는 동안 바람은 몸을 비벼 첼로의 낮은 음을 만들고 나는 그 소리에 내 비애의 키를
한 옥타브 내려 맞추었어요 내 슬픔은 비명소리보다 낮은 음에 더 잘 어울리거든요
오늘은 내 슬픔보다 더 많은 산벚나무 팽나무 갈참나무 작은 잎들이 결별하는 날 오후 내내 리기다소나무 잎들이
금빛 실비를 지상에 뿌리며 흐느껴 우는 날 나는 비처럼 내리는 초독(楚毒)을 향해 은빛 금관악기를 불었어요
내 어깨 내 손등을 바늘 끝으로 찌르며 쏟아지는 아픈 모음들
그러나 나는 파멸보다 먼저 가을이 찾아오고 노을이 아직도 내 한쪽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산의 나무들과 내게
이별이 찾아온 걸 고맙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서서 이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를 경배하는 오늘은
이 산의 모든 나무들이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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