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눈이 그린 길 - 김용택

효림♡ 2010. 1. 25. 08:11
                         

 

*  눈이 그린 길 - 김용택 

 

낯선 마을에 눈 온다

가만가만 내리는 눈발을 헤치고

네 얼굴을 찾는다. 네 얼굴은 보였다가 숨고 다시 나타나면 눈이 너를 가져간다

바람이 부느냐, 눈은 내리면서 때로 허공에 수평으로 눕고

높은 산 벽을 눈발들이 들이받는다

새들은 마을 가까이 내려와 가난한 마을 처마 끝을 헤집고

네 얼굴에 너는 너를 숨기고

새들은 추운 제 날개깃에 제 머리를 모로 꺾어 숨긴다

오! 네 눈을 보고, 네 눈 속에서 나는 너를 찾고

너는 저쪽 눈발 속에 몇개의 표정으로 눈을 맞으며 나무처럼 서 있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얼굴, 어여쁜 얼굴, 슬픈 얼굴

눈은 그렇게 너를 그리고 또 지운다. 끝내 슬프구나

눈은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고

긋다가 지우고

그쳤다가 다시 오고

수직으로 천천히 흰 선을 긋는다

새들이 날아올라 빈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아

부리에 묻은 흙을 털고 다시

눈 쌓인 땅에

한 마리 두 마리 내려와

떼가 되어 날아올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눈송이들은 허공에 누웠다가 바로 서며

서성이다가 지상에 발을 내린다

늘 길이 먼저 눈을 받아 길을 그린다

눈이 그린

그 길을 걷는다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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