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그린 길 - 김용택
낯선 마을에 눈 온다
가만가만 내리는 눈발을 헤치고
네 얼굴을 찾는다. 네 얼굴은 보였다가 숨고 다시 나타나면 눈이 너를 가져간다
바람이 부느냐, 눈은 내리면서 때로 허공에 수평으로 눕고
높은 산 벽을 눈발들이 들이받는다
새들은 마을 가까이 내려와 가난한 마을 처마 끝을 헤집고
네 얼굴에 너는 너를 숨기고
새들은 추운 제 날개깃에 제 머리를 모로 꺾어 숨긴다
오! 네 눈을 보고, 네 눈 속에서 나는 너를 찾고
너는 저쪽 눈발 속에 몇개의 표정으로 눈을 맞으며 나무처럼 서 있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얼굴, 어여쁜 얼굴, 슬픈 얼굴
눈은 그렇게 너를 그리고 또 지운다. 끝내 슬프구나
눈은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고
긋다가 지우고
그쳤다가 다시 오고
수직으로 천천히 흰 선을 긋는다
새들이 날아올라 빈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아
부리에 묻은 흙을 털고 다시
눈 쌓인 땅에
한 마리 두 마리 내려와
떼가 되어 날아올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눈송이들은 허공에 누웠다가 바로 서며
서성이다가 지상에 발을 내린다
늘 길이 먼저 눈을 받아 길을 그린다
눈이 그린
그 길을 걷는다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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