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초혜 시 모음

효림♡ 2010. 5. 18. 08:21

*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

 

* 꽃은 피는데

다시는 이 봄에

못 오실 줄 알지만

꽃이 피니 행여나

어리석어라

 

육체 떠난

오라버니 영혼

내게로 와

시시때때로

살을 당기는 아픔

생각은 그리움이라 *

 

* 세상 가는 길

생명의 새벽이

어둠이라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

오고 간

이 길

 

처음에

끝을 얻지 못할 줄

어찌 압니까

 

삶의 피안에

죽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의 마음으로부터

사로잡힌 마음

끌어내려고

 

언제나 제자리걸음

그렇게

이 세상을 오고 갑니다 *

 

* 밤바다

부서지는 것이

어디

너뿐이랴

 

부서져

파도가 못 되어

울고 섰노라 *

 

* 인생

한 번에 무너지는
자운영 꽃밭보다는
매일 무너지는
자운영 꽃밭을 *

 

* 변명

바람이 매화 가지를
꺾었다 마십시오
매화 가지가 꺾이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음의 덮개가
열리고 닫히는 것은
귀신도
못 봤습니다 *

 

* 세월
그대가 존재하는 까닭은 오래되었다
나의 어디에나 그대는 있다
오래되어 쓰지 못하는 만년필에도 있고
쓰임새가 없어 버려진 손수건에도 있고

책갈피에 넣어둔 냉이꽃에도 있다
그대와 일상언어로 주고받던 웃음에도 있고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에도 있고
싹트는 소리가 들리는 봄밤에도 있다
달그림자에 꽃그늘이 아름다운 밤에도 있고
눈이 내려 쌓이는 밤에도 있고
한밤중 잠들어도 그대는 온다
삶의 마지막 순간
의식 없는 의식 속에도
그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대와 내가 없다면
해가 진들
달이 뜬들
무슨 소용이랴 *

 

* 사랑굿 1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님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火焰)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게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 

 

* 사랑굿 7
그곳이 어디든
무심(無心)한 곳으로
나는 가고 싶네

세상살이로
흐려진 눈
밀어버리고

혼자서 무어라
지껄인대도
들어줄 이 없는
적막에 싸여

그대를
조금씩 단념하면서
적막을 보태어
살다가 보면

설움도 나를
놓아주리니 *

 

* 사랑굿 25

너와 내가 합쳐져
하나의 별이 되자
아무도 못 보게
억만 광년 빛으로
반짝거림이 되자

입이 메어지도록
고통이 들어차도
변덕부림 없이
나뉘인 육신을
서로 잡아주자

제일로 가까운
첫번째의 별에
집을 짓고 맹목을 심어
태양도 여기에선
휘어지게 하자

아무것도 못 아는
무재주를 사랑하며
차 있으나

넘쳐 흐르지 않는
순한 불이 되자 *

 

* 안부
강을 사이에 두고

꽃잎을 띄우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이때가 꽃이 필 때라고

오늘도 봄은 가고 있다고

무엇이리

말 하지 않은 그 말 *

 

* 탐욕              
무심코 그리면
날아가는 새의
숨소리도 그리고
떠난 자리
그 허공까지 그리는데
잘 그리려 하면
날아가는 새인지
앉아 있는 새인지
눈앞이 흐린다 *
  

 

* 첫눈  

구름이 낮아지더니

눈이 내린다

 

과거는 현재로 오고

현재는 과거로 돌아간다

 

허름한 세월에

어두운 저녁에

고요하게 내리는

 

하늘이 땅에

내려앉아서

쉬어가려나보다

갈 길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걷고 싶다 *

 

* 먼길

길을 떠나기 전에

묻고 싶었으나

길을

떠난 후였고

길을 걸을 때

묻고 싶었으나

숨이 가빴다

지금

길이 없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

 

* 그리움

천둥소리 내 안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다보면

 

그대

이마를 적시는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으리라 *

 

* 그리움을 위하여  

벚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

내 집 마당에

꽃그늘을 드리웠다

섬에 갇힌 내게

손을 내민다

그래, 꽃의 일생이

아깝지 않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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