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우울한 샹송 - 이수익

효림♡ 2010. 7. 20. 08:24

*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 반항 
[위험물질 접근 금지]라는 글씨 크고 붉게 쓴

 

트럭 위로
우루루 가스통들이 실려 가고 있다
집중단속에 걸려든 조폭들처럼
실려 가는 동안에도 반성 없이 그들은 툴툴거린다
어디, 우리를 건드릴 테면 건드려 보라구!
세상 하나쯤 왈칵 뒤엎어 놓을 수도 있다는 듯이 *

 

* 벌레

잘 익은 과일 속, 果核근처에

무단 침입자와 같이 벌레 한 마리가 박혀 있다

 

과일을 자르던 딸아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가만히, 빛의 한가운데로 노출된

움추린 벌레의 죽음을 들여다 본다

 

달디단 맛 향그런 냄새에 취한

벌레는 그렇게 죽어도 좋았으리라

녀석은 차라리 과육이라도 되고 싶었겠지

 

벌레를 떨어내면서, 나는

언젠가 地上으로부터 나의 죽음을 떨어낼

神의 눈빛 속에

나는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그려본다 *

 

* 새

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써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

 

* 그리운 악마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악마 같은 여자 *

 

* 열애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외도(外道)도 즐기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 감고 돌아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 안개꽃

불면 꺼질 듯

꺼져서는 다시 피어날 듯

안개처럼 자욱이 서려 있는

꽃.

 

하나로는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무엇이라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그런 막연한 안타까움으로 빛깔진

초변(初變)의

꽃.

 

무데기로

무데기로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형상(形像)이 되어

설레이는 느낌이 되어 다가오는 그것은

 

아!

우리 처음 만나던 날 가슴에 피어오르던

바로 그

꽃! *

*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랜덤하우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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