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인사동 - 고은

효림♡ 2010. 9. 28. 11:33

* 인사동 - 고은  

인사동에 가면 오랜 친구가 있더라

얼마 만인가

성만 불러도

이름만 불러도 반갑더라

무슨 잔치같이 날마다 차일을 치겠는가

무슨 잔치같이

팔목에

으리으리한 팔찌 끼고 오겠는가

빈손이

오로지 빈손을 잡고

그냥 좋기만 하더라

 

험한 세상 피멍 들며 살아왔다

조금은 잘못 살았다

너는 내달리기만 하였고

나는 풀잎 하나에도 무정하였다

인사동에 오면

그런 날들 가슴에 묻어

고향 같은 골목들 그냥 좋기만 하더라

 

어찌 15년 20년 친구뿐이겠는가

인사동에 오면

추운 날 하얀 입김 서러워

모르는 얼굴들

어느새 정다운 얼굴이더라

 

인사동에 가면

한잔 술 주고받을

친구가 있더라

서로 나눌 지난날이 있더라

얼마 만인가

얼마 만인가

밤 이슥히 손 흔들어

헤어질 친구가 있더라

 

오늘밤은 아직 내일이 아니더라

성만 불러도

이름만 불러도

반가운 친구가 있더라

인사동에 가면 * 

* 고은시집[두고 온 시]-창비

 

* 인사동으로 가며 - 김종해 
인사동에 눈이 올 것 같아서
궐(闕) 밖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퍼다 버린 그리움 같은 눈발
외로움이 잠시 어깨 위에 얹힌다.

눈발을 털지 않은 채
저녁 등이 내걸리고
우모(羽毛)보다 부드럽게
하늘이 잠시 그 위에 걸터앉는다.

누군가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눈 속에 파묻는다.
궐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내 생의 그리움
오늘은 인사동에 퍼다 버린다. *

 

* 인사동 - 나태주  
도둑놈들만 득실거리고
장물아비들만
가게를 내고 있는 거리
예술갑네 문화인입네
거드름 피우는 작자들
저것 좀 어떻게 업어갈 수
없을까
군침 흘리며 눈빛 휘번덕이며
지나가는 뒷골목.
*

 

* 인사동에서 - 권오범 
한평생 씻지 못했을 것 같은 화로부터
늙수그레한 향로 촛대 재떨이 워낭 주발
아무렇게나 누워있어도 눈이 가는
장죽 곰방대 수저

조것들 목욕만 시켜주면
방금 태어난 것처럼 피부가 반질반질할 것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해야
사랑받는 엉큼한 세상

청동 놋쇠 업을 업고 환생한
오만 잡것들 바라보는
꾀죄죄한 난쟁이 부처님 옆
졸고있는 주인장이 부처보다 더 늙었다

나는 어쩌자고 저 허물없는 것들을
고향 등질 때 구닥다리로 치부해 죄 버렸을까,
반닫이 풍로 놋대야 닭다리미 인두 요강
고서는 올챙이 적 딱지치기로 없애고

 

* 인사동 - 이생진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仁寺洞)을 찾지 못하는 것은

동서남북에 서 있어도

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

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

동(東)은 낙원동으로 빠지고

서(西)는 공평동으로

남(南)은 종로 2가에서

북(北)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

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종로 1,2,3,4가가 어우러져

하루 6만 명의 발걸음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조선시대 관인방(寬仁坊)의 '인(仁)'과

대사동(大寺洞)의 '사(寺)'가 만나

인사(仁寺)라 하였으니

거기 가거든 반갑다고 인사(人事ㆍ仁寺)나 하라 *

* 이생진시집[인사동]-우리글

 

* 인사동 - 권갑하

오래

걸어온 것들은

모가

닳아 있다

 

이윽한

눈빛

 

연잎 같은 마음

 

안으로

향기가 스며

단단하고

 

은은하다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오래된 가을  (0) 2010.09.28
성선설 - 임영조  (0) 2010.09.28
망해사(望海寺) - 송종문   (0) 2010.09.20
가을애가 - 이준호  (0) 2010.09.14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 나태주   (0) 201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