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월(涯月)에서 - 이대흠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고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옵니다 항구에는 지친 배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울어댑니다
살 그리운 몸은 불 닿은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집니다 먼 곳에서 온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됩니다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어둠에 눅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오늘도 마음 밖을 다니는 발걸음만 분주합니다 *
* 귀가 서럽다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
* 아름다운 위반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런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드렸는디 *
* 이대흠시집[귀가 서럽다]-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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