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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吾魚寺)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 황동규

효림♡ 2011. 11. 7. 09:06

* 오어사(吾魚寺)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 황동규

 

1
오어사에 가려면
포항에서 한참 놀아야 한다.
원효가 친구들과 천렵을 즐기던 절에 곧장 가다니?
바보같이 녹슨 바다도 보고
화물선들이 자신의 내장을 꺼내는 동안
해물잡탕도 먹어야 한다.
잡탕집 골목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그곳 특산 정어리과(科) 생선 말린 과메기를
북북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고
금복주로 입 안을 헹궈야 한다.
그에 앞서 잡탕집 이름만 갖고
포항 시내를 헤매야 한다.
앞서 한번 멈췄던 곳에 다시 차를 멈추고
물으면 또 다른 방향,
포기할 때쯤 요행 그 집 아는 택시 기사를 만난다.
포항역 근처의 골목 형편은
머리 깎았다 기르고 다음엔 깎지도 기르지도 않은
원효의 생애만큼이나 복잡하고 엉성하다.

2
허나 헤맴 없는 인간의 길 어디 있는가?
무엇이 밤 두시에 우리를 깨어 있게 했는가?
무엇이 온밤 하나를 원고지 앞에서 허탕치게 했는가?
석곡란에 늦은 물 주고,
밤이 하얗게 새는 것을 보게 했는가?

3
포항서 육십 리 길
말끔히 포장되어 잇다.
하늘까지 포장되어 있다.
너무 부드럽게 달려
마음의 밑바닥이 오히려 벗겨진다.
허나 마음 채 덜컹거리기 전에
오른편에 운제산이 나타나고
오어호(湖)를 끼고 돌아
오어사로 다가간다.

4
가만!
호수 가득
거꾸로 박혀 있는 운제산 큰 뼝대.
정신놓고 바라본다.
아, 이런 절이!
누가 귓가에 속삭인다.
모든 걸 한번은 거꾸로 놓고 보아라,
뒤집어놓고 보아라.
오어사면 어떻고 어오사(魚吾寺)면 어떤가?
혹 이미 절이 아니면?
머리 쳐들면 또 깊은 뼝대.

5
원효 쓰고 다녔다는
잔 실뿌리 섬세히 엮은 삿갓 모자의 잔해,
대웅전 한구석에서 만난다.
원효의 숟가락도 만난다.
푸른색 굳어서 검게 변한 놋 녹.
다시 물가로 나간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호수에선
원효가 친구들과 함께 잡아 회를 쳤을 잉어가
두셋 헤엄쳐 다녔다.
한 놈은 내보란 듯 내 발치에서 고개를 들었다.
생명의 늠름함,
그리고 원효가 없는 것이 원효 절다웠다. *

 

* 황동규시집[삶을 살아낸다는 것]-휴먼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