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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곡(思美人曲) - 정철

효림♡ 2011. 10. 21. 08:36

* 사미인곡(思美人曲) - 정철

이 몸 생겨날 제 임을 따라 생겼으니 한 평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오직 젊어 있고 임 오직 날 사랑하니 이 마음 이 사랑은 견줄 데 다시 없다 
평생에 원하기를 한데 살자 하였더니 늙어서 무슨 일로 따로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모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동안 어찌하여 하계(下界)에 내려왔소 
올 적에 빗은 머리 얽혀진 지 삼년이라 연지분 있다마는 눌 위하여 곱게 할고  
마음에 맺힌 근심 첩첩이 쌓여 있어 짓느니 한숨이요 지느니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사철이 때를 알아 가는 듯 다시 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많고 많다

봄바람 건듯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어라 
가뜩이나 냉담한데 임향은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조차 베개 밑에 비치니 
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 데 보내고저!  
임이 너를 보면 어떻다 여기실까 

 
꽃 지고 새 잎 나니 녹음(綠陰)이 깔렸는데 비단 휘장 적막하고 수(繡)장막이 비어 있다 

부용장(芙蓉帳) 걷어 놓고 공작병풍 둘러 두니 가득 시름한데 날은 어찌 지루한고 
원앙금(鸳鸯锦) 베어 놓고 오색실 풀어내어 금(金)자에 겨누어서 임의 옷을 지어 내니  
솜씨는 물론이고 규격도 갖췄구나

 
산호(珊瑚)나무 지게 위에 백옥함(白玉函)에 담아 두고 임에게 보내고자 
임 계신 데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멀고도 험할시고 
천리 만리 길을 누가 뉘라서 찾아 갈고 가거든 열어 보고 나인지 반기실까 
하루 밤 서리 김에 기러기 울며 날 제 누각에 혼자 올라 수정발 걷으니 
동산에 달이 돋고 북극에 별이 뵈니 임이신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맑은 빛 자아내어 봉황루(鳳凰樓)에 보내고저!  
누(樓)위에 걸어 두고 온 누리에 다 비취어 깊은 산과 골짜기도 대낮 같이 만드소서 

 
천지가 얼어 붙어 흰눈이 일색인데 사람은 커녕 나는 새도 끊어졌다  
소상강(瀟湘江) 남쪽도 추움이 이렇거늘 옥루(玉樓) 높은 곳은 더욱 말해 무엇하리  
봄볕을 부쳐 내어 임 계신 데 쏘이고저! 처마에 비친 해를 옥루에 올리고저! 
붉은 치마 걷어 차고 푸른 소매 반만 걷어 해질 녘 대숲에서 생각을 하고 한다 
짧은 해 쉽게 지어 긴 밤을 고쳐 앉아 푸른 등 걸은 곁에 전공후(鈿箜篌) 놓아 두고  
꿈에나 임을 보려 턱 받고 기댔으니 원앙금(鸳鸯锦)도 차고 차다 이 밤은 언제 샐고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만 생각 말고 이 시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있어 골수에 사무치니 편작(編作)이 열이 온들 이 병을 어찌 하리 
아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스며들어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 족족 앉았다가 향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기리라 
임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리라 *

 

 

* 속미인곡(續美人曲)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오그려 백옥경(白玉京) 좋은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날도 다 저무는데 누굴 보러 가시는고  

아! 너로구나 내 사설(私說) 들어 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사랑 받을 만한가마는 임은 어찌 날 보시고 너로구나 여기실 새  
나도 임을 믿어 딴 뜻이 전혀 없어 아양이야 응석이야 

어지럽게 굴었든지 반기시는 낯빛이 옛과 어찌 다르신고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리니 내 몸의 지은 죄가 산같이 쌓였으니 
하늘이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물하랴 서러워 생각하니 조물(造物)의 탓이로다  

그런 생각 마오 
맺힌 일이 있나이다 임을 모셔봐서 임의 일을 내 알거니 물 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 일고  
봄 추위, 무더위 어찌하여 지내시며 가을날, 엄동은 누가 또 모셨는고 
새벽 죽 아침, 저녁 진지는 예과 같이 잡수는가 기나긴 밤에 잠은 어찌 주무시나 

 
임 계신 곳 소식을 어떻게든 알자 하니 오늘도 저물도다 내일이나 사람 올까 
내 마음 둘 곳 없다 어디에로 가잔 말인가  
잡거니 밀거니 높은 산에 올라가니 구름은 물론이오 안개는 무슨 일고 
산천이 어두운데 해와 달 어찌 보며 지척을 모르는데 천리를 바라보랴  
차라리 물가에 가 뱃길이나 보자 하니 바람이야 물결이야 어리둥절 되었구나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고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임 계신 곳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초가집 찬 자리에 밤 중 쯤 돌아오니 반 벽 등잔은 누굴 위해 밝았는고  
오르며 내리고 헤매며 방황하니 어느덧 피곤하여 풋잠을 잠깐 드니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니 옥 같은 얼굴이 반(半)이 넘게 늙었어라 
마음속에 먹은 말씀 실컷 사뢰려 하였더니 눈물이 쏟아지니 말인들 어이하며  
정을 못다 풀어 목마저 메니 방정맞은 닭 울음에 잠은 어찌 깨었던고  

아아! 허사로다 이 임이 어디 가셨는고 잠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가련한 그림자만이 날 따를 뿐이로다 
차라리 스며들어 지는 달이나 되어서 임 계신 창안에 환하게 비치리라 

각시님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