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달빛 선원의 황금사자 - 최동호

효림♡ 2011. 11. 7. 09:07

* 달빛선원의 황금사자 - 최동호 

막다른 계곡에 부딪쳐 용틀임하는 거친 바람이
큰 나무 둥치를 쓰러트릴 듯이 휘감다가, 칠성판에서
튀어오른 뼈다귀들 불티 가라앉히는 소리 들리면
지척에서 대들보 갈라지는 소리 혼불이 빠져나가듯
하얗게 옹이진 나뭇결을 발라낸다 돌아누우면
무처럼 냉한 바람든 육신의 뼈마디가 헐거웁게 서걱댄다

大寂의 달빛 저편 어둑한 개울가의 돌무더기는
솜눈옷 갈아입고 묵상하는 아기 눈부처가 되었는데
無今의 마당에는 뒤꿈치에서 꼬리 달린 소소리바람이
달빛은 놓아두고 귀신 붙은 나뭇잎만 쓸어간다
해묵은 육신에 생의 불꽃을 피우려는 선방에선
황금사자가 넘나드는 칸 너머 문풍지 바르르 몸을 떤다 *

 

* 둥근 달에게 달마를 묻다 

붉은 살덩어리
어린 아해가 막 울고 있는데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먹구름은 까마득한 날부터
빗방울의 길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네
어린 아해는 목이 붓도록 울어도
오갈 것이 본래 없는데
숯검덩이 달마는 탈바가지 덮어쓰고
왜 동쪽으로 찾아왔는가
달빛 잔잔히 누빈 강물에
달마 눈썹 하늘 비추니
서쪽 하늘에서 떨어진 둥근 달아
네 가는 곳이 어디더냐
엉덩짝을 걷어차니
뜰 앞의 짚신 한 짝! *

 

* 공놀이하는 달마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저물녘까지 공을 가지고 놀이하던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공터가 자기만의
공터가 되었을 때
버려져 있던 공을 물고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와 놀고 있다

처음에는 두리번거리는 듯하더니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공터의 주인처럼 공놀이하고 있다
전생에 공을 가지고 놀아본 아이처럼
어둠이 짙어져가는 공터에서 개가
땀에 젖은 먼지를 일으키며 놀고 있다 다시

 

옛날의 아이가 된 것처럼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공터에서 쭈그러든 가죽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개는
놀이를 멈출 수 없다 공터를 지키고 선
키 큰 나무들만 골똘하게 놀이하는 그를
보고 있다 뜻대로 공이 굴러가지 않아 허공의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늑대처럼 빛날 때

공놀이하던 개는 푸른빛 유령이 된다 길게 내뻗은 이빨에
달빛 한 귀퉁이 찢겨 나가고
귀신 붙은 꼬리가 일으킨 회오리바람을 타고
공은 하늘로 솟구쳤다 떨어지기도 한다
어둠이 빠져나간 새벽녘
이슬에 젖은 소가죽 공은 함께 놀아줄
달마를 기다리며 버려진 아이처럼 잠든다 *

 

* 생선 굽는 가을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썰렁한 그림자 등에 지고
어스름 가을 저녁 생선 굽는 냄새 뽀얗게 새어나오는
낡은 집들 사이의 골목길을 지나면서
삐걱거리는 문 안의

정겨운 말소리들 고향집 불빛 그리워 되돌아보면
낡아가는 문틀에
뼈 바른 생선의 눈알같이 빠꼼이 박힌
녹슨 못자국


흐린 못물 자국 같은 생의 멍울이 간간하다 *

 

* 사랑의 앞마당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아무도 막지 않아요
아무도 보지 않아요

새도 바람도 다람쥐도
개미도 햇빛도 굼벵이도 한눈 팔 듯

울타리 없는 마당에서
그대로 마음껏 뛰놀다

신바람 파도처럼 오글오글 살아나니
사랑의 숨소리 머리칼에 햇살이랑 찰랑이리 * 

 

* 눈 그친 날 달마의 차 한 잔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은산철벽 마주한 달마에게
바위덩이 내려누르는 졸음이 왔다
눈썹을 하나씩 뜯어내도
졸음의 계곡에 발걸음 푹푹 빠지고

마비된 살을 송곳으로 찔러도 졸음이 몰아쳐왔다
달마는 마당으로 나가
팔을 잘랐다 떨어지는 선혈이 튀어*
하얗게 솟구치는 뿌연 벽만 바라보았다

졸음에서 깬 달마가 마당가를 거닐었더니
한 귀퉁이에 팔 잘린 차나무가
촉기 서린 이파리 햇빛에 내보이며
병신 달마에게 어떠냐고 눈웃음 보내주었다

눈썹도 팔도 없는 달마도 히죽 웃었다
눈 그친 다음날
바위덩이 졸음을 쪼개고 솟아난 샘물처럼
연푸른 달마의 눈동자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게나)

* 혜가는 어깨 높이로 눈 내린 날 스승에게 법을 물었다.

스승 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을 자르고 난 다음 혜가는 달마의 법을 얻었다.

* 최동호시집[공놀이하는 달마]-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