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봄 시 모음 3

효림♡ 2012. 3. 23. 08:18

* 경칩 부근 - 조병화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 봄을 위하여 -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회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 봄날 - 김남조  
타던 불 다 사위고

새로이 불붙는 불살들을 보시려면

창을 여십시오

성인 같은 덕성으로

억만초목이 돋아남을 보시려면

창을 여십시오

 

창을 여십시오

굳은 마음 아지랑이로 푸는

참말로 사랑보다 더 좋은

자연을 만나실 거예요

 

오늘은

이름도 안 붙은

어린 봄날일 거예요

 

* 봄 풍경 - 신달자  

싹 틀라나

몸 근질근질한 나뭇가지 위로

참새들 자르르 내려앉는다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새들이 무작위로 혀로 핥거나 꾹꾹 눌러 주는데

가지들 시원한지 몸 부르르 떤다

 

다시 한 패거리 새떼들

소복이 앉아 엥엥거리며

남은 가려운 곳 입질 끝내고는

후드득 날아오른다

 

만개한 꽃 본다

 

* 초록색 속도 - 김광규  

이른 봄 어느 날인가

소리 없이 새싹 돋아나고

산수유 노란 꽃 움트고

목련 꽃망울 부풀며

연녹색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며

갑자기 바빠집니다

단숨에 온 땅을 물들이는

이 초록색 속도

 

* 꽃피는 것 기특해라 - 서정주 
봄이 와 햇빛 속에 꽃 피는 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 피는 것 기특하여라. *

 

*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 - 박재삼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

 

* 봄 노래 - 황인숙

낮잠 좀 자려는데
동네 아이 쉬지 않고
대문을 두드리네.
"공좀 꺼내주세요!"
낮잠 좀 자려는데
어쩌자구 자꾸만
공을 넘기는지.

톡톡톡 누가
창문을 두드리네.
"하루해 좀 꺼내주세요!"
아아함, 낮잠 좀 자려는데.

마음껏 꺼내가렴!
대문을 활짝 열고
건들건들 거리로 나섰네.
아아함, 아아함
낮잠 좀 자렸더니.

 

* 봄의 노래 - 신현림 
종다리 높은 울음에
모두 잠에서 깨어나기로
약속이 있었나보다

민들레 뽀얀 얼굴.
천사 꿈을 꾸고
마파람 간지러움에
까르르 개나리 웃음소리

아침부터 취한 진달래 보며
장독대 아지랑이 어지럽단다

가만히 있어도 가득 차는 금 빛 아래
생명들의 그림자 놀이

푸른 풀밭에 발돋움하고
수줍게 걸어오는 봄 각시여..

 

*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 김남주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꾹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 봄은 스캔들이다 - 최형심

목련, 바람이 났다.

알리바이를 캐내려는 흥신소 사내가 분주하다.

흰 복대를 동여맨 두툼한 허리가 어딘지 수상하다.

하루가 다르게 치마폭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저기 나뭇잎들이 쑥덕쑥덕거린다.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온 개봉동에 다 퍼졌다.

소문에 시달리던 목련,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몸을 활짝 열어젖힌다.

 

봄이 뜨겁다. *

 

* 봄꽃이고 싶다 - 강명주  
파스텔 빛
유채색의 봄날이 오면
나는
향기로운 꽃이고 싶다

진노랑 같이
개나리로 불리고
꽃 분홍 같이
진달래로 불리고

매화인 듯 목련인 듯
눈부신 흰빛 되고
꽃향기 되고 싶다

봄비 농익은 입맞춤으로
이렇게
떨리는 두근거림
일렁이는 날에는

가슴에 물결 치는 대로
피어오르는
그런
영혼의 꽃 피우고 싶다
목단이고 싶고 작약이고 싶다

하늘도
땅도
봄이 여무는  날에는
힘없이 쓰러져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지천에 신록이 한창이면
봄비 되어
죽어가는
모든 것의 숨결이고 싶다
 
 

 

* 짝사랑 - 이병초 

고1때 그녀를 만났다
같은 반이었고 자주색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 해 봄 교정은 장미꽃밭이었다

그림 그리고 싶던 그녀의 날개옷이 출렁거리면
밑그림 들추는 꽃그늘마다
밤새도록 날개옷으로 긁히던 꽃밭,
뒷머리 곱게 딴 세월이 무턱대고 넘실거리는 꽃밭을
속살을 떨며 참새떼가 날아올랐다

참고서 속에 감춘 편지도, 찌그러진 달빛도
무작정 그어댔던 성냥불도 다 잊어먹고
사락사락 봄눈이 내리고 있다 *

* 김용택저[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태동출판사

 

* 꽃이 핀다는 것은 - 김판용 

꽃이 핀다는 것은

그리움이 사무쳐 삭는다는 것.

내 안의 피가 솟아

터지는 상처 같은 것이리.

무엇도 나를 지치게 할 수는 없지.

오지 않는 그대로 하여

날은 가물고

그래서 불꽃을 피우다

남몰래 잎들 지우지.

하나, 또 꽃을 피운다는 건

아직 가슴이 뜨겁다는 것.

만리의 그대까지

거리를 지져대는 꽃 가슴에 살아

붉게 터지는

저 기다림의 상처들. *

* 김용택저[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태동출판사

 

* 부안에서 보내는 봄 편지 - 이용범  
흙이 부드러워져 농부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부안땅 여기저기 파릇한 보리가
동진강 가 나문재 일으키는 바람처럼 싱그럽습니다.
수성당 동백이 햇살을 덥힙니다.
햇살보다 마음이 먼저 길 따라 나섰습니다.
해창 앞바다 봄바람이 내변산 치맛자락을 들춰봅니다.
속살 부끄러이 의상봉 진달래가 수줍어 얼굴 붉힙니다.
들은 산에게 산은 바다에게
바다는 다시 들에게
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운 편지를 씁니다. *

* 김용택저[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태동출판사

 

* 꽃길 - 이행 

그윽한 꽃 수도 없이 제 빛깔로 피어난
오솔길 굽이지며 산을 따라 오르네
봄바람아 남은 향기 쓸어가지 말아라
멋스런 분 있다면 술을 싣고 오리니

* 花徑 - 李荇 

無數幽花隨分開 - 무수유화수분개 

登山小逕故盤廻 - 등산소경고반회

殘香莫向東風掃 - 잔향막향동풍소

倘有閑人載酒來 - 당유한인재주래

 

* 봄마늘 - 정끝별 
욕설같이 불쑥 주먹같이
흰마늘쪽이 꿈틀,
매운 눈 비비며
폭음처럼 질주하는
숨가쁜 휘발성
시퍼렇게 물오른
상추 고추 사이 봄마늘 마늘고추장
마늘 향기 하얀 남도 마늘꽃
오 싱싱한 봄밤
꽃이 아니어도 풀이 아니어도
하르르 피워내는
저 화냥기좀 봐
쉿! 쉿!
당차게 뿜어대는 저 독기 좀 봐
봄바다를 게릴라처럼
상추 고추 사이 봄마늘 마늘고추장
마늘향기 하얀 남도 마늘씨 *

 

* 동아일보 펌

빛보다도 빠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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