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어머니 시 모음

효림♡ 2012. 8. 23. 09:57

*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 老母 - 문태준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 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 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

 

* 어머니 5 -검버섯 - 반칠환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
 

 

* 어머니 - 김선태 
어머니는 밭에 계신다
긴긴 여름 그 뜨거운 햇빛 아래
삶의 가시덩쿨 같은 쑥부쟁일 캐며
어머니는 언제나 밭에 계신다
어둠이 내려도 밭에 계신다
어둠과 한몸이 되어 밭에 계신다
아, 그때 어두컴컴한 산마루에
가난한 우리 마을의 초승달이 뜬다
흰 눈물자국 같은 이 땅의 초승달 뜬다

 

* 어머니의 연잎- 최영철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개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 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

 

* 사모곡 - 김종해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 걸친, 엄마 -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 어머니 - 이해인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겇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히 담겨 있는 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 어떤 귀로 - 박재삼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 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 안에 제멋대로 딩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

 

* 어머니의 향기(香氣) - 박목월 
어머니에게서는
어린 날 코에 스민 아른한 비누냄새가 난다.// 
보리대궁이로 비눗방울을 불어 울리던 저녁 노을 냄새가 난다.// 
여름 아침 나절에
햇빛 끓는 향기가 풍긴다.// 
겨울밤 풍성하게 내리는
눈발 냄새가 난다.// 
그런 밤에
처마 끝에 조는 종이초롱의
그 서러운 석유 냄새// 
구수하고도 찌릿한
백지(白紙) 냄새// 
그리고
그 향긋한 어린 날의 젖내가 풍긴다. *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엄마 -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 함민복 
여보시오 ― 누구시유 ―
예, 저예요 ―
누구시유, 누구시유 ―
아들, 막내아들 ―
잘 안 들려유 ― 잘.
저라구요, 민보기 ―
예, 잘 안 들려유 ―
몸은 좀 괜찮으세요 ―
당최 안들려서 ―
어머니 ―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
전화 끊지 마세요 ―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려니서 털컥.

 

달포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소 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

 

* 어머니 - 이성부   

서 있는 뒷모습에 힘이 꿈틀거린다

머리에 인 광주리 기름병 꼭지 하늘로 뾰족하고

옷 소매 걷어 올린 팔뚝과 불끈 쥔 두 주먹

강동한 치마 아래 두 종아리가 저리 뻣뻣하다

어지러운 세상의 얼굴 속에서도

사랑을 품고 나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당당한 법이다

내 책상머리에 삼십여 년째 놓여 있는 박수근의 목판화 기름 장수 아낙

마주 앉을 때마다 설악 용아릉*의 험한 바위들과

낭떠러지와 거기 용솟음치는 기운이 내 앞에 나란히 놓인다

위를 겨냥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불끈불끈 용틀임을 하지만

언제나 그 안에 슬픔을 다독이며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패배에 고개 숙인 짠한 몰골이 아니라

어려운 삶을 헤쳐나가는 씩씩한 두 다리와

두 팔과 어깨의 저 완강함

가장 낮은 고무신 코도 위를 향하는 저 날카로운 길항(佶抗)

세계가 그 앞에 엎드려 무릎 꿇게 하는 저 뜨거운 응축(凝縮)

저 피 울음 다음의 굳센 기립(起立)과

노여움을 삭여 힘으로 바꿔 만드는 저 고요함이

뒷모습에 그대로 꽃피고 있는 것 나에게는 잘 보인다 

* 설악산 내설악의 용아장성능선

* 이성부시집[도둑 산길]-책만드는집

 

* 어머니의 성모상 - 황규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대낮에도 어두운 고향집에 가면
방 한쪽에 성모상과 촛불이 서 있다
가만 보면 살짝 팔짱을 껴보고 싶은 여인 같은데
어머니는 무슨 기도를 하시려고
방에다 성모상까지 모셔놔야 했을까
대한성서공회간 공동번역성서도 더듬더듬 읽는 양반이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사연 같은 걸
아직도 품고 사신다는 얘기 같아
마당에 넌 빨간 고추만 바라보곤 했다
나는 신(神)을 부수며 살았고
어머니는 그걸 받아들인 것이다
당신의 말하기 힘든 시절이
유전되고 증식된다는 걸
때로는 벗어나려 몸부림도 쳤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나는 그 앞에만 앉으면 유순해진다
어느날은 세상에게, 장대비 쏟아지던 길 위에서
그만 무릎 꿇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성모상 앞이 아니라면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다시 마음을 뿌드득 움켜쥐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아직껏 입술 달싹이는 어머니의 기도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

*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창비시선 300 기념시선집

 

* 길 -박수근의 그림 - 허만하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 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았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았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른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 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이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

* 김용택[시가 내게로 왔다 2]-마음산책

 

* 읍별자모(泣別慈母
) - 신사임당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回首北村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별칭[踰大關領望親庭]-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봄

 

* 詩曰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니

哀哀父母여 生我劬勞삿다 欲報深恩인데 昊天罔極이로다.
시경에 말하기를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힘쓰고 수고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 갚고자 한다면 넓은 하늘과 같아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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