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화등선(羽化登仙) - 김용택
형, 나 지금 산벚꽂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 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 버릴 년
어디 없을까. *
* 남쪽
여그, 남쪽이구만요
뭔 꽃이 이런다요
매화꽃도 피어불고,
복사꽃도 피어불고,
산수유꽃도 피어불고,
내 마음도 덩달아 이리 지랄이고
뭔 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다 피어분다요
이 꽃들이 시방 제정신이 아니지라
다 미쳤지라
* 절정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의 가장 슬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어둔 곳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미쳐서
꽃은 핍니다. *
*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 *
* 당신 생각
홍매 피는
선암사에 갑니다.
꽃이 지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당신 생각 하겠어요.
하나 둘 셋 넷
지는 붉은 꽃잎이 땅에 닿기 전에
내 마음 실어
그대 곁으로
날려 보낼랍니다.
* 속눈썹
산그늘 내려오고
창밖에 새가 울면
나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두 눈에
그대가 가득 고여온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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