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섬진강 30 - 1970 - 김용택

효림♡ 2013. 5. 20. 17:08

* 섬진강 30 - 1970 - 김용택

 

공장 담벼락 응달 밑 눈이 다 녹았다.

동무들이 새로 불어났다.

양지쪽 시멘트 벽에 기대서서 해바라기를 한다.

자기 동네 누가 새로 서울로 올라왔다고도 하고

고향 마을 돌담이 헐리고 초가지붕이 뜯긴단다.

좁은 빈터에서 동무들이 배구를 한다.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으로 민들레 새싹들이 돋았다.

남쪽 마을 언덕에 느티나무 까치집을 새로 짓고

남쪽 가지부터 새순이 눈틀 것이다.

아버지는 강 건너 산밭으로 거름을 지고 오르고

어머니는 보리밭을 매겠지.

누이는 중학교에 잘 갔는지. 입학금은 어떻게 냈는지.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동생들 차비를 구하러

이웃 마을 골목길을 달음질하고

동생들은 쑥 돋는 논두렁에 서서

하얀 뿌리가 나올 때까지 땅을 차며 서 있을 것이다.

때 낀 배구공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동무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바닥이 다 보이는 강물 속 돌멩이같이 해맑은 얼굴들,

봄볕은 가난한 얼굴들의 그늘까지 벗긴다.

붕대 감은 손이 자꾸 욱신거린다.

고향으로 다시 갈까.

직장을 옮길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이 약속된 땅은 서러운 땅이다.

나도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찬다.

돌부리가 걸렸는지 발가락이 아프다.

이가 마주치는 이 가난,

돌멩이 끝이 보인다.

흩어진 흙을 모아 다시 돌멩이를 덮는다.

햇살 때문인지

이마가 뜨겁다.

그해 그 봄

나는 그렇게 서울

영등포에 있었다. *

 

* 김용택시집[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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