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련(睡蓮) - 심창만
선정(禪定)은 조는 것
풀 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는 것
오후 두시에도 순례자를 맞는 것
그의 빈 꽃받침 위에 잠시 머무는 것
그의 친구의 꽃받침 위에도 나누어 머무는 것
이런 날은 늦게까지 하루를 놓아주는 것
그러나 잊지 않는 것
물마당을 쓸어놓고 어둠을 맞는 일
밤 깊은 실뿌리로부터 다시 밟는 일
정수리가 환하도록
밤새 진흙을 밟는 일
진흙을 밟고
아침 풀 끝에 올라앉는 일
* 심창만시집[무인 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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