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성대 - 정호승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 꺼내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 단 한 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 불던 그믐밤
첨성대 꼭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밤마다 할머니도 첨성대 되어
댕기 댕기 꽃댕기 붉은 댕기 흔들며
별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동짓달 흘린 눈물 북극성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 방울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 위에
버려진 버선 한 짝 남 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무덤 몰래 하나 파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논 할머니 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는 산여우 울음소리
첨성대 창문턱을 날마다 넘나드는
동해바다 별 재우는 잔물결소리
첨성대 앞 푸른 봄길 보리밭길을
빚쟁이 따라가던 송아지 울음소리
빙빙 첨성대를 따라 돌다가
보름달이 첨성대에 내려앉는다
할아버지 대지팡이 첨성대에 기대놓고
온 마을 석등마다 불을 밝힌다
할아버지 첫날밤 켠 촛불을 켜고
첨성대 속으로만 산길 가듯 걸어가서
나는 홀로 별을 보는 일관(日官)이 된다
지게에 별을 지고 머슴은 떠나가고
할머닌 소반에 새벽별 가득 이고
인두로 고이 누빈 베동정 같은
반월성 고갯길을 걸어오신다
단옷날 밤
그네 타고 계림숲을 떠오르면
흰 달빛 모시치마 홀로 선 누님이여
오늘 밤 어머니도 첨성댈 낳고
나는 수놓는 할머니의 첨성대가 되었다
할머니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 정호승시집[내가 사랑하는 사람]-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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