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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삭임 - 고은

효림♡ 2014. 10. 15. 17:52

* 그 속삭임 - 고은


비가 오다
책상 앞에 앉다
책상이 가만히 말하다
나는 일찍이 꽃이었고 잎이었다 줄기였다
나는 사막 저쪽 오아시스까지 뻗어간
땅속의 긴 뿌리였다

 

책상 위의 쇠토막이 말하다
나는 달밤에 혼자 울부짖는 늑대의 목젖이었다

 

비가 그치다
밖으로 나가다
흠뻑 젖은 풀이 나에게 말하다
나는 일찍이 너희들의 희로애락이었다
너희들의 삶이었고 노래였다
너희들의 꿈속이었다

 

이제 내가 말하다
책상에게
쇠에게
흙에게
나는 일찍이 너였다 너였다 너였다
지금 나는 너이고 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