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29 - 김용택
문득
잠에서 깼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은 어머니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어머니의 뒷말을 찾던 아내는 옆에 잠들어 있다.
기운 달빛은 마을을 빠져나가고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소슬바람결을 따라 풀벌레 울음소리가 끊긴다.
문득 생이 캄캄하다.
별빛 하나 없는 밤에도 강을 건너
콩밭의 경계를 찾던 뿌리를 거두며 어머니는 강을 건너와 강가에 선다.
아가, 강 저쪽이 왜 이리 어둡다냐.
어머니, 밭들이 다 묵었습니다.
물이 흐르는데, 물이 흐르는데, 강을 건널 힘이 내게 없어
이제 내 눈이 저 건너 강기슭에도 가 닿지 못하는구나.
강가에서는 회수할 것이 없구나.
퍼낼 수 없는 오래 묵은 생의 슬픔이 고인다.
그러나 무엇이 슬픈가. 슬픔도 환하게 강에 비운다.
잠든 어머니의 강가에는
구절초 꽃이 피어 있다.
이 발걸음으로 앞선 저 물살을 어찌 따라잡을까.
나는 옛 강에 누웠다.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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