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울고 들어온 너에게 - 김용택

효림♡ 2016. 9. 26. 09:00

* 가을 아침 - 김용택

구름을 다 쓸어내고

하늘가로 나도 숨었다.

그래, 어디, 오늘도

니들 맘대로 한번 살아봐라. *

 

* 찔레꽃

외로운 사람은 자기가 지금 외롭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그때 그랬듯이

먼 훗날

꽃이, 그런 빛깔의 꽃이

풀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이의 희미한 웃음 같은 꽃이

길가에 *

 

* 어느날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

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 *

 

* 건널목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배운 대로 살지 못했다.

늦어도 한참 늦지만,

지내놓고 나서야

그것은 이랬어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다음 발길이 닿을

그곳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한걸음 딛고

한걸음 나아가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건널목에

서 있다. *

 

* 울고 들어온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

 

* 도착
도착했다.

몇해를 걸었어도

도로 여기다.

아버지는 지게 밑에 앉아

담뱃진 밴 손가락 끝까지

담뱃불을 빨아들이며

내가 죽으면 여기 묻어라, 하셨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기다.

일어나 문을 열면 물이고

누우면 산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해가 떴다가 졌다.

아버지와 아버지 그 아버지들, 실은

오래된 것이 없다.

하루에도 몇번씩 물을 건넜다.

모든 것이 어제였고

오늘이었으며

어느 순간이 되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빈손을 보았다.

흘러가는 물에서는

달빛 말고 건져올 것이 없구나.

아버지가 창살에 비친 새벽빛을 맞으러

물가에 이르렀듯

또다른 생인 것처럼 나는

오늘 아버지의 물가에 도착하였다.

 

* 쉬는 날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

 

* 김용택시집[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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