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 김용택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며 햇살을 쏟아냅니다 눈이 부시네
요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
대를 기다립니다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지요
차들이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늘 보던 풍경이 때
로 낯설 때가 있지요 세상이 새로 보이면 사랑이지요 어디만
큼 오고 있을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가 오는 그 길에 찔레꽃
은 하얗게 피어 있는지요 스치는 풍경 속에 내 얼굴도 지나가
는지요 참 한가합니다 한가해서, 한가한 시간이 이렇게 아름
답네요 그대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생각하다가 나는, 무슨 생각이 났었는지, 혼자
웃기도 하고, 혼자 웃는 것이 우스워서 또 웃다가, 어디에선
지 불쑥 또다른 생각이 날라오기도 합니다 생각을 이을 필요
도 없이 나는 좋습니다 이을 생각을 버리는 일이 희망을 버리
는 일만큼이나 평화로울 때가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고 나
뭇잎이 흔들립니다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디서 그대를 기다릴
까 오래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 갑니다 아! 산다
는 것, 사는 일이 참 꿈만 같지요 살아오는 동안 당신은 늘 내
편이었습니다 내가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당신은 내 편이었지
요 어디만큼 오셨는지요 차창 너머로 부는 바람결이 그대 볼
을 스치는지요 산과 들, 그대가 보고 올 산과 들이 생각납니
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갑니다 기다릴
사랑이 있는 이들이나, 기다리는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
들은 행복합니다 어디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습니
다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는데, 이제, 어디에
서 기다려도 그대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합니다 당
신도 세상도 저기 가는 저 수많은 차와 사람들도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든 옵니다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색다른 사랑이 올 줄을 몰랐습
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
* 김용택시집[그래서 당신]-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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