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그리움 - 김용택

효림♡ 2014. 7. 10. 17:32

* 그리움 - 김용택 

눈을 감으면

당신이 따라 들어와요.

그 산, 그 물, 그 꽃, 그 나무,​ 그 새,

그 노래들, 그 바람까지도

그리워요. *

 

* 살구꽃 

누님은 하루 종일 고개 들지 않았습니다.

큰 집 돌담에 기대선 아름드리 살구나무 살구꽃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날려

푸른 이끼 돋는 돌담 위에 가만가만 내려앉습니다.

신랑을 따라 고샅길은 잠시 두세 두세 환했습니다. 텃논 한쪽 귀퉁이, 끝이 까맣게 탄 마늘들이 솟고

배웅객들이 반질거리는 텃논 논두렁에 모여 서서 흰 두루마기 강바람에 나부끼며 휘적휘적 누님 앞서 가는 

큰 신랑을 바라보았습니다. 푸른 보리밭 너머로 매형 따라 깜박 사라지는 누님. 팔짱을 풀고 사람들이 마을로 흩어졌습니다.

구나무 살구꽃들도 후후후 흩날려 손거울 사라진 누님의 빈방 지붕 위로 집니다. *

 

* 홑이불  

새벽바람이

맨발을 스치고 지납니다.

낮달을 끌어다 덮습니다.

바람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눈을 감아도 따라 들어오지 않은 메마른 얼굴이 있습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일이 문득문득 하루 종일입니다.

산그늘 밖으로 손을 내놓은 나무들,

닭들이 뒤뚱거리며 산그늘을 따라 배추 밭까지 나갔습니다.

허리가 굽은 늙은 농부 부부가 텃논에서 마른 짚을 묶어세우고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 기댄 먹감나무

먹감들이 하얀 서리꽃을 덮고 알맞게 먹물이 드는 동안

마당에서는 이미 마른 감잎들이 끌려 다닙니다

강을 건넌 햇살은 무덤 잔디 위에서 침묵으로 하루가 편안하였습니다.

거짓 없이 시드는 아름다운 저녁 햇살,

난생처음 그립다며 내게 울던 당신

나는 아직도 그대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낮달을 끌어다가

꿈틀대는

맨발을 덮습니다.

 

* 절정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의 가장 슬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어둔 곳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미쳐서

 

꽃은 핍니다. * 

 

* 빈말 

꽃집에 가서

아내가 꽃을 보며 묻는다.

여보, 이 꽃이 예뻐

내가 예뻐.

참 내, 그걸 말이라고 해.

 

당신이 천 배 만 배 더 예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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