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어디에다 고개를 숙일까 - 김용택

효림♡ 2013. 10. 4. 09:05

* 어디에다 고개를 숙일까 - 김용택

 

어디에다 고개를 숙일까
아침 이슬 털며 논길을 걸어오는 농부에게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쇠뜨기풀에게
얼음 속에 박힌 지구의 눈 같은 개구리 알에게
길어나는 올챙이 다리에게
날마다 그 자리로 넘어가는 해와 뜨는 달과 별에게 그리고 캄캄한 밤에게
저절로 익어 툭 떨어지는 살구에게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둥그렇게 앉아 노는 동네 아이들에게
풀밭에 가만히 앉아 되새김질하는 소에게
고기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강물에게
호미를 쥔 우리 어머니의 흙 묻은 손에게
그 손 엄지손가락 둘째 마디 낮에 나온 반달 같은 흉터에게
날아가는 호랑나비와 흰나비와 제비와 딱새에게
저무는 날 홀로 술 마시고 취한 시인에게
눈을 끝까지 짊어지고 서 있는 등 굽은 낙락장송에게
날개 다친 새와
새 입에 물린 파란 벌레에게
비 오는 가을 저녁 오래된 산골 마을 뒷산에 서서 비를 다 맞는 느티나무에게

 

나는 고개 숙이리 *

 

* 김용택시집[그래서 당신]-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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