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사랑이 다예요 - 김용택

효림♡ 2015. 10. 5. 08:30

* 그러면 - 김용택

바람 부는 나무 아래 서서

오래오래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반짝이는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그러면,

당신은 언제나 오나요? *

 

* 별일

양말도 벗었나요. 

고운 흙을 양손에 쥐었네요.

등은 따순가요.

햇살 좀 보세요.

거참, 별일도 다 있죠.

세상에, 산수유 꽃가지가

길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노란 저 꽃 나 줄 건가요.

그래요.

줄게요.

다요, 다. *

 

* 바람

바람도 없는데

창문 앞

나뭇잎이 흔들리네요.

 

나를 안아주세요. *

 

* 연애

언제나

내 마음 난간에

아슬아슬

서 있는 사람

그렇게

절벽 난간에 서서

나를

부르는 사람

부르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아!

아찔한

사람 *

 

* 한낮의 꿈

깜박 속았지

한낮에 붉은 입술

땅이 푹 꺼졌어

눈 떠보니

가만히 닿던

그 서늘함

흔적 없었지

거짓말이었어

꿈이었지

한낮의 꿈

붉은 너의 입술

산을 열고

돌을 쪼개고

흙담을 허물고 나와

너는

내 마음속

가장 어둔 곳을

살짝 치켜세운

속눈썹 같은

한 송이 꽃이었다네 *

 

* 나

그대를 생각하며 봄비 오는 5월 산 바라보면

오! 숨이 턱까지 꽉 차 오릅니다.

숨넘어가기 전에 나 다 가지세요. *

 

* 큰일

날 저물면 산그늘 내려오듯

제 가슴에 서늘한 산 그림자 하나 생겨났습니다.

그 그림자 나를 덮어오니

큰일입니다.

당신을 향해 차차 데워지는 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큰일입니다.

뜨거워서

날이 갈수록 뜨거워져서

내 몸이 델 것 같은데,

인자 나는

참말로

큰일 났습니다. *

 

* 현기증

몽롱해집니다.

피곤하고 졸리운데

당신이 내 가슴에 한없이 파고드시니

대체, 여기는 어디랍니까. *

 

* 그랬어요

불 꺼진 방에 달빛은 가득했고

소쩍새는 밤 새워 울고

강물은 내 시린 가슴에 길을 내며 흐르고

내 여자는 없고, *

 

* 빈 들

빈 들에서

무를 뽑는다

 

무 뽑아 먹다가 들킨 놈처럼

나는

하얀 무를 들고

한참을 캄캄하게 서 있다

 

때로

너는 나에게

무 뽑은 자리만큼이나

캄캄하다 *

 

* 흰 손

해 지는 서산으로 간다

아름다워라

산그늘 속 흰 억새꽃에 나는

눈 못 뜨겠네

걸어온 길도 걸어갈 길도

해는 지고

산그늘 속 억새꽃

하얀 손짓에

어지러워라 눈 못 뜨겠네

내가 희게 부서지겠네 *

 

* 당신의 꽃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

 

* 꽃 한 송이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한 송이 *

 

* 새

이 겨울

너를 보낸다

시퍼런 하늘

매운 바람 속을 날아간다

빨갛게 언

너의 맨발에

얼음이 박혀 있다. *

* 김용택사랑시선집[사랑이 다예요]-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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