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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고 - 박남준

효림♡ 2017. 10. 10. 09:00

* 친절한 경고 - 박남준

 

달달하고 구수한 꽃다방표

미국에서 살다 온 병희형은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는 줄 몰랐다고

놀라기도 했다는데 한때 반짝 팬이었다는데

전라도 어느 마을 고장 난 자판기 앞 격문이 붙었다

 

 자판기 아짐 보씨요

 다음에도 커피  눌렀는디

 비타파워 나오면 기계는 죽소

 이거시 한두 번이 아니요

 양심껏 장사하씨요

 

저 비장하고 결의에 찬 단호한 의지

기계는 죽소라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

멱살을 잡혀 흔들리고

주먹다짐 손찌검 발길질에

욕을 먹어도 애진작이었을 텐데

허 참, 그것참, 경고가 친절하다 *

 

* 도동년에게 - 박남준

 

도심 골목 담벼락 밑 작은 꽃밭
어느 할머니 애지중지 상추와 쑥갓을 키웠으리
자식 따라가며 논밭을 버린 후 속창시 빠진 마음
솔솔 재미 붙이는데
누가 자꾸 뽑아가나 그 심정
궁리 끝에 헌 종이박스에 담아 꽂아 놓았구나

 

 도동년 나뿐연
 상추 뽀바간연
 처먹고 디저라
 한두 번도 아니고 매년

 

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
상추를 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자못 심각한 것인데
무섭다기보다 재미있어서
도동년은 이제 욕도 처먹었겠다 상추를 또 뽑아갈 것 같고
그다음 처방은 뭐라고 내 걸릴까 슬슬 궁금해지고
시방 나는 웃음이 나는 걸 어쩌겠는가 *

 

* 박남준의 악양편지[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