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절한 경고 - 박남준
달달하고 구수한 꽃다방표
미국에서 살다 온 병희형은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는 줄 몰랐다고
놀라기도 했다는데 한때 반짝 팬이었다는데
전라도 어느 마을 고장 난 자판기 앞 격문이 붙었다
자판기 아짐 보씨요 다음에도 커피 눌렀는디 비타파워 나오면 기계는 죽소 이거시 한두 번이 아니요 양심껏 장사하씨요 |
저 비장하고 결의에 찬 단호한 의지
기계는 죽소라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
멱살을 잡혀 흔들리고
주먹다짐 손찌검 발길질에
욕을 먹어도 애진작이었을 텐데
허 참, 그것참, 경고가 친절하다 *
* 도동년에게 - 박남준
도심 골목 담벼락 밑 작은 꽃밭
어느 할머니 애지중지 상추와 쑥갓을 키웠으리
자식 따라가며 논밭을 버린 후 속창시 빠진 마음
솔솔 재미 붙이는데
누가 자꾸 뽑아가나 그 심정
궁리 끝에 헌 종이박스에 담아 꽂아 놓았구나
도동년 나뿐연 |
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
상추를 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자못 심각한 것인데
무섭다기보다 재미있어서
도동년은 이제 욕도 처먹었겠다 상추를 또 뽑아갈 것 같고
그다음 처방은 뭐라고 내 걸릴까 슬슬 궁금해지고
시방 나는 웃음이 나는 걸 어쩌겠는가 *
* 박남준의 악양편지[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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