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첫키스 - 한용운

효림♡ 2019. 1. 7. 14:00

* 첫키스 - 
마셔요 제발 마셔요
보면서 못 보는 체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입술을 다물고 눈으로 말하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뜨거운 사랑에 웃으면서 차디찬 잔 부끄럼에 울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세계의 꽃을 혼자 따면서 항분(亢奮)에 넘쳐서 떨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미소는 나의 운명의 가슴에서 춤을 춥니다. 새삼스럽게 스스러워 마셔요 *

* 한용운시집[님의 침묵]-미래사

 

* 키스에 대한 책임 -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너의 눈물과 죽음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빌딩과 빌딩 사이로 낡은 초승달이 떠 있는 골목길
밤은 초승달을 책임지고 있다
초승달은 새벽을 책임지고 있다

 

* 첫키스에 대하여 - 정호승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바다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 않으려다 보지 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의 눈물이었다

 

*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 - 이문조

첫눈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처음만큼 설레는 것도 없다

눈 내리는 고요한 이 밤
첫눈 올 때 우리 만나자는
희미한 옛날의 약속 떠올리고

첫사랑의 그녀를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보고

첫 키스의 달콤하고 황홀한 솜사탕을
다시 핥아 본다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는 그 약속
아직도 유효한지
달려가고만 싶은 소년의 마음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

 

* 키스 키스 키스 - 신현림
떠드는 말이 부딪쳐
상처와 이별을 만들고
따뜻한 수증기로 스미면
마음의 키스가 되지

키스 키스 키스
번역해서
뽀뽀는 얼마나 예쁜 말이니
삶이 아프지 않게 시원하게
말은 사려깊은 타월이 돼야지

매순간 모든 이로부터 버려질
쓰레기까지 뽀뽀하는 마음으로
"네 일은 잘 될거야
 네 가슴은 봄바다니까"
인사하는 바로 그것

삶이 꽃다발처럼 환한 시작이야

 

*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 김용택

내 입술은 식었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내가 사라진 너의 텅 빈 눈동자를
내 손등을 떠난 너의 손길을
다시 데려올 수 없다.

달 아래 누우면

너를 찾아 먼 길을 가는

발소리를 나는 들었다.

초저녁을 걷는 발소리를 따라

새벽까지

푸른 달빛 아래 개구리가 울고,

이슬 젖은 풀잎 위에서 작은 여치가 젖은 날개를 비비며 울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이 있다.

미련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마음은 떠났다.

(중략)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돌아앉아버린 식은 사랑의 얼굴을 보았기에

나는 더 나아가지 않으련다.

오오, 사랑이여! 이제 나를 끌어안아다오. *

 

* 키스시작 - 김중일

두사람 지평선 왼쪽 맨 가장자리에서 공기로 빚은 얼굴만 한 빵을 한입씩 나누어 베어 물듯 고요하게
왼쪽 맨 가장자리가 지구 한바퀴 돌아 오른쪽 맨 가장자리를 따라잡기까지 순식간에 

실업한 두사람 발치에 떨어진 풍선을 몰래 들듯 가만히
두 손으로 서로의 얼굴을 들고 온몸 부풀어 떠오르도록 입 맞대고 서로를 숨처럼 서로에게 불어넣고 

어느새 달아오른 살갗 주름진 표정을 뒤집어쓴 두사람
온몸을 서로에게 구겨넣고 이제 멀리 떠나버리려는 듯 마지막으로 키스하는 두사람
서로의 몸속에 각자 온몸을 다 쏟아붓자 사라진 두사람
눈앞에 남은 건 한주먹의 투명한 적막뿐 

적막을 걷고 맨 앞으로 등장하는 두사람
숨소리로 빚은 얼굴만 한 빵을 한입씩 베어 먹듯 막 키스를 시작하는 두사람 *

* 김중일시집[내가 살아갈 사람]-창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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