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도깨비 감투 - 이갑수

효림♡ 2018. 12. 7. 09:00

* 도깨비 감투 - 이갑수

사람이라면 누구나
쓰면 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도깨비 감투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은
제 도깨비 감투를 쓰고서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들 간다 
 
인간들은 모두
사람 감투를 쓰고 있다
이 세상에 사람들만 사는 줄로 알게 된다는  
사람 감투를 쓰고서
투명인간처럼 나아간다 *

 

 

* 도깨비기둥 - 이정록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정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한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 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進軍)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아빛, 그 솟구침, 그 얼음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碎氷船)을 처박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 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먼 하늘주소까지 *

* 이정록시집[정말]-창비,2010

 

* 도깨비가 되어 - 김종제

경주 토함산 뒤편
동해 쪽에 자리잡은 장항사터
천 년 동안이나 문 닫아 걸고
돌탑을 지켜왔던
험상궂은 도깨비 자물쇠 한 쌍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군가 아무리 두드려도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누군가 다가 오기만 하면
저 혼자 알아서 스르륵 열리는
마음을 가져
나도 그대를 천 년 만 년 지켜주는
도깨비가 되고 싶다
사람의 몸짓과 사람의 말을 하고
소의 발굽을 가지며
네 개의 눈에다
여덟 개의 손과 여덟 개의 발
머리에는 날카로운 뿔도 있고
귀밑의 수염이 마치 창처럼 뻗어 있는
반신반인의
저 용맹한 장수 치우가 되면 어떨까
그래서 수 천 수 만 번
내 사랑을 노리는
악귀를 물리치는 것이다
한낮에는 숨어있다가
해가 지고 슬그머니 밤이 습격해 오면
형체도 없이
꿈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빛으로 출몰하는 것이다
창을 흔드는 바람이나
빰에 닿는 뜨거운 숨결로
그대 옆에 늘 붙어 있는 것이다

 

* 도깨비불 - 이가림

단 한번만이라도
꺼지지 않는 사랑 보듬어보기 전에는
늪 속에 빠져 죽을 수가 없어
밤마다 얼굴 없는 절망을 껴안고
공중에서 떠돌아다니는 사내의
시퍼런 시퍼런 그리움
*

* 이가림시집[순간의 거울]-창비,1995

 

* 도깨비 도로와 놀다 - 복효근

계를 부어 떠난 육남매 가족여행
제주시 노형동 어리목 가는 길목
기울어진 길 아래쪽에 물을 부으면
위쪽으로 흘러가는
도깨비 도로가 있었네

어머니 칠십 여섯 평생에 처음 있는 가족여행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찾은 역설의 평화,
우울증에서 돌아온 큰형의 위태한 평화가 깨질까 두려워
눈에 가득 바닷물이 고인 채
마이크 잡고 노래부르시네
사랑으은얄미운나빈가봐아

착시현상이라고 관광가이드는 설명했지만
진짜 도깨비 장난이라 믿고 싶네
빈 병을 언덕 아래 놓으면 언덕 위로 굴러가고
언덕 아래 물을 부으면 언덕 위로 흘러가네
거꾸로 된 세상이 있긴 있네

희안타 참 희안타
언덕 위로 걸어가시는 어머니가 자꾸자꾸 젊어지더니
열아홉 새색시로 웃고 서있네
맞지 않아도 되는, 울지 않아도 되는
굶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있긴 있다고…

자꾸만 착시라고 우기며 길을 재촉하는 가이드 뒤통수에
아니여 아니여 말은 않았지만
어머니의 바다는 끝내 넘치지 않고
사랑은얄미운나빈가봐 나도 다 모르는
가요를 끝까지 다 부르셨네

 

* 도깨비를 기다리며 - 유안진 

벌건 대낮에 도깨비를 기다린다.

하늘, 하늘꼭대기까지 사무치고 사무쳐서

도통( 道通)하게 되면

추위를 누리고 배고픔을 누리고 피눈물도 누릴 수 있다지만

이제는 싫다.

차라리 땅 속 밑바닥 ..... 암흑까지 사모치고 사모친

감정의 완전 비무장지대로 가서

홀려서 홀린 채로 킬킬대고 싶다.

도깨비가 되고 싶다.

꿈만 같은 동화 (童話)만 같은 그런 일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서도 기다려진다.

* 유안진시집[다보탑을 줍다]-창비,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