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 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좋아하는 詩 2018.03.19
세한 - 장석남 * 세한(歲寒) - 장석남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외롭다 소나무는 연대하지 않는다 독자 노선의 소나무마다는 바람의 사업장이다 대장간이 되어 연장을 벼리다가 사나운 준마들을 키운다 나의 뺨은 얼어간다 늑골 아래 연인은 기침을 한다 바람은 재빨리 기침을 모아 갈밭 속에 뿌리고 지난 .. 좋아하는 詩 2018.03.12
별 - 오태환 * 별 - 오태환 - 어느 날 나는 꿈에서 허블망원경을 쓰지 않고도 우주의 아주 먼 곳까지 구경하게 되었다 모퉁이를 따라 여우비처럼 맑게 뿌리는 별들 좀 보세요 연(蓮)뿌리가 잔뜩 드러난 진흙구렁 성운을 끼고, 좀생이별이 소금쟁이나 물장군 흰 민물새우나 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쭈.. 좋아하는 詩 2018.03.08
배꽃 - 곽재구 * 무화과 - 곽재구 먹감색의 작은 호수 위로 여름 햇살 싱싱하다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엄마가 어디 가셨니? 엄마가 어디 가셨니? 별이 초롱초롱한 밤이면 그중의 한 나무가 배고픈 내게 .. 좋아하는 詩 2018.03.02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 * 해바라기의 碑銘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 좋아하는 詩 2018.02.28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 오상순 *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 - 오상순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현실이다.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이다.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 아시아는 .. 좋아하는 詩 2018.02.26
비단 안개 - 김소월 * 비단 안개 - 김소월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요,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마 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 .. 좋아하는 詩 2018.01.08
철길 - 김정환 *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 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 오름을 적셔 주었다. 무너져 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 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 좋아하는 詩 2018.01.02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 황인숙 *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 황인숙 하얗게 텅 하얗게 텅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텅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리속 텅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 * 송년회 칠순 여인네가.. 좋아하는 詩 2017.12.26
송년(送年) - 김규동 * 송년(送年) - 김규동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 좋아하는 詩 201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