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포에서 - 이상국 * 茁浦 2 - 서정주 사내 열두 살이면 피는 꽃이나 맑은 햇살이나 좋은 여자의 얼굴이 눈에 그냥 비치는 게 아니라 그 가슴에까지 울리어 오기 비롯는 나이 일본 <나가노>라는 데서 <요시무라 아야꼬>라는 서른네 살짜리 과부 여선생이 혼자서 3학년 된 우리 담임 선생으로 정해져 .. 좋아하는 詩 2017.12.08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 최금진 *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 최금진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 좋아하는 詩 2017.12.05
12월 - 김이듬 * 사과 없어요 - 김이듬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 달라고 할까, 그러면 이 종업원이 .. 좋아하는 詩 2017.12.01
겨울 여행자 - 황학주 * 겨울 여행자 - 황학주 어느날 야윈 눈송이 날리고 그 눈송이에 밀리며 오래 걷다 눈송이마다 노란 무 싹처럼 돋은 외로움으로 주근깨 많은 별들이 생겨나 안으로 별빛 오므린 젖꼭지를 가만히 물고 있다 어둠이 그린 환한 그림 위를 걸으며 돌아보면 눈이 내려 만삭이 되는 발자국들이 .. 좋아하는 詩 2017.12.01
주전자 - 유병록 * 주전자 - 유병록 누가 내다 버렸을까 우그러지고 칠 벗겨진 달이 비를 맞는다 지붕도 처마도 없어 빗방울이 광대뼈에 그대로 꽂힌다 높이 떠올랐을 때 그 빛으로 여럿이 따뜻했겠다 달을 두고 둘러앉아 동그랗게 입술을 모으기도 했으리 기울이면 온기가 흘러나오고 기울이면 사랑이 .. 좋아하는 詩 2017.11.23
날마다 강에 나가 - 박남준 * 날마다 강에 나가 - 박남준 흐르는 것은 눈물뿐인데 바람만 바람만 부는 날마다 강에 나가 저 강 건너오실까 내가 병 깊어 누운 강가 눈발처럼 억새꽃들 서둘러 흩어지고 당신이 건너와야 비로소 풀려 흐를 사랑 물결로도 그 무엇으로도 들려 오지 않는데 * * 별이 지는 날 어디 마음 둘 .. 좋아하는 詩 2017.11.23
오솔길을 염려함 - 장석남 * 오솔길을 염려함 - 장석남 나는 늘 큰길이 낯설므로 오솔길을 택하여 가나 어머니는, 내가 가는 길을 염려하실 테지 풀이 무성한 길, 패랭이가 피고 가을이라 나뭇잎이 버스럭대고 독한 뱀의 꼬리도 보이는 맵디매운 뙤약볕 속으로 지워져가는 길 어느 모퉁이에서 땀을 닦으며 나는 아.. 좋아하는 詩 2017.10.10
친절한 경고 - 박남준 * 친절한 경고 - 박남준 달달하고 구수한 꽃다방표 미국에서 살다 온 병희형은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는 줄 몰랐다고 놀라기도 했다는데 한때 반짝 팬이었다는데 전라도 어느 마을 고장 난 자판기 앞 격문이 붙었다 자판기 아짐 보씨요 다음에도 커피 눌렀는디 비타파워 나오면 .. 좋아하는 詩 2017.10.10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 좋아하는 詩 2017.09.19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 박남준 *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 박남준 뭉게구름이 세상의 기억들을 그렸다 뭉갠다 아직껏 짝을 찾지 못한 것이냐 애매미의 구애는 한낮을 넘기고도 그칠 줄 모르네 긴 꼬리 제비나비 노랑상사화 꽃술을 더듬는다 휘청~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 잠자리들 전깃줄에 나란하다 이제 .. 좋아하는 詩 2017.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