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무 - 정희성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 좋아하는 詩 2016.06.02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 좋아하는 詩 2016.05.22
갓나물 - 백석 * 갓나물 - 백석 삼수갑산 높은 산을 내려 홍원 전진 동해바다에 명태를 푸러 갔다 온 처녀, 한달 열흘 일을 잘해 민청상을 받고 온 처녀, 삼수갑산에 돌아와 하는 말이─ "산수갑산 내 고향 같은 곳 어디를 가나 다시 없습데, 홍원 전진 동태 생선 좋기는 해도 삼수갑산 갓나물만 난 못합데.. 좋아하는 詩 2016.05.09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 김명인 *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 김명인 졸음기 그득 햇살로 쟁여졌으니 이곳도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본 풍경 속이다 화단의 자미 늦여름 한낮을 꽃방석 그늘로 펼쳐 놓았네 작은 역사는 제 키 높이로 녹슨 기차 한 량 주저앉히고 허리 아래쪽만 꽉 깨물고 있다, 정오니까 나그네에겐 분별조.. 좋아하는 詩 2016.04.26
지나가네 - 나호열 * 지나가네 - 나호열 서녘 하늘에 걸린 노을을 읽는다 붉어졌으나 뜨거워지지 않는 마음 한 자락을 닿을 수 없는 손길로 걸어 놓아도 그 깃발을 신기루로 이미 알아 버린 탓일까 아직 노을이 꺼지기에는 몇 번의 들숨이 남아 있어 긴 밤을 건너갈 불씨로 빙하기로 접어든 혈맥을 덥힐 뜨거.. 좋아하는 詩 2016.04.22
그래서 즐거웠는지 - 정현종 * 그래서 즐거웠는지 - 정현종 가을에 연중행사처럼 하는 일을 하러 가면서 작년 이맘때도 요만큼 쌀쌀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즐거웠는지, 여전히 살아 있는 감각 때문에 즐거웠는지, 다시 찾아 입은 옷이 즐거웠는지, 모든 흐름의 적막한 내밀(內密)이 즐거웠는지...... 다시 노.. 좋아하는 詩 2016.04.20
격렬비열도 - 박후기 * 격렬비열도 - 박후기 격렬과 비열 사이 그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 * * 흠집 이가 깨져 대문 밖에 버려진 종지에 키 작은 풀 한 포기 들어앉았습니다 들일 게 바람뿐인 독신, 차고도 넉넉하게 흔들립니다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습니다 * * 물집 선운사 대웅전 앞 배롱나무 관절을 어루.. 좋아하는 詩 2016.04.20
봄날은 간다, 가 - 문인수 * 감나무 - 문인수 올해도 고향집 감을 땄다. 복잡하게 우거진 가지들 중에 매년 내가 골라 딛는 순서가 있다. 지금은 진토가 되었을 아버지의 등뼈, 허리 휜 그 몸 냄새를 군데군데 묻혀둔 바이지만 타관 길엔 도통 어두운 이 말씀. 감나무를 오르내리는 내 구부정한 그림자도 어느덧 늙은.. 좋아하는 詩 2016.04.18
심심풀이로 아픈 거지 - 강경주 * 심심풀이로 아픈 거지 - 강경주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만 고 정도도 안 아프면 무신 재미로 살것냐 까짓거 성가시긴 해도 동무삼아 사는 겨 * *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바람이 불어도 비는 오고 바람이 안 불어도 비는 오고 꽃이 질 때 바람이 불고 꽃이 필 때도 바람은 불고 바라미 .. 좋아하는 詩 2016.04.18
순간들 - 임동확 * 순간들 - 임동확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지만 어쩐지 그 자리가 비어있는 듯해서 곰곰 생각하면 자폐아 아들을 빚처럼 남긴 채 홀연 떠난 바보새 출판사 김규철 사장처럼 사실은 아주 가난해서 문득 눈물짓게 하는 것들. 그래, 가만 화장실에 다녀오다 담배 한 대 피우며 무심히 올.. 좋아하는 詩 201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