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난초 - 이병기

효림♡ 2008. 9. 25. 08:50

 

* 난초 4 - 이병기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震)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 꽃 

꽃을 보려하고 봄 오기를 바랐더니

새우는 찬바람 끝에 겨우 피려 하던 꽃이

덧없이 퍼붓는 비에 그저 지고 말아라 *

 

* 풍란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玲瓏)하다 
썩은 향나무껍질에 玉같은 뿌리를 서려두고 
청량(淸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 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品이며 그 香을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

 

* 고토(故土) 3

龍華山 구름 자고 天壺에 달 오르다

백련화 곁에 두고 못가으로 거니노니

이따금 서늘한 바람 향을 불어오도다 *

 

* 별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작인다

저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

 

* 청매(靑梅) 2

청매는 다문다문 피인 지 二十여 일

꽃은 다 져도 푸른 다대와 여의

그리고 싱동싱동한 향은 그저 남았다

 

靑梅는 아니 늙고 외롭지도 아니하다

푸른 가지엔 퍼린 움이 돋아난다

오늘쯤 파란 새들도 찾아올까 싶으다

 

* 청매(靑梅) 3

봉마다 방긋방긋 구슬보다 영롱(玲瓏)하다

낼 모레면 다 필 듯 벗들도 오라 하였다

진실로 너로 하여서 떠날 길도 더뎠다

 

대체 福이란 건 길고 짜를 뿐이다

夭니 壽니 함도 이걸 일컬음인데

짜르고 긴 그동안을 우리들은 산다 한다

 

오늘 아침에야 봉 하나이 벌어졌다

홀로 더불어 두어 잔을 마시고

좀먹은 古書를 내어 床머리에 펼쳤다 *

 

* 새벽 

돋는 새벽빛에 窓살이 퍼러하다

白花藤 香은 상머리 떠돌고

꾀꼬리 울음은 잦아 여윈 잠도 잊었다

 

松花 누른 가루 개울로 흘러오고

돌담 한 모르에 시나대 새순 돋고

茶밭엔 茶잎이 나니 茶나 먹고 살을까 *

 

* 梅' 水仙 '蘭 

零下 十五度의 大寒도 다 지내고

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

뜰앞의 梅花 봉오리도 볼록볼록 하고나

 

한잠 자고 나면 꿈만 시설스러웠다

이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

일깨어 손주와 함께 뛰고 놀고 하였다

 

한 盆 水仙은 농주를 지고 있고

여러 蘭과 蕙는 잎새만 퍼런데

호올로 병을 기울여 菊花酒를 마셨다 *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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