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초 4 - 이병기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震)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 꽃
꽃을 보려하고 봄 오기를 바랐더니
새우는 찬바람 끝에 겨우 피려 하던 꽃이
덧없이 퍼붓는 비에 그저 지고 말아라 *
* 풍란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玲瓏)하다
썩은 향나무껍질에 玉같은 뿌리를 서려두고
청량(淸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 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品이며 그 香을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
* 고토(故土) 3
龍華山 구름 자고 天壺에 달 오르다
백련화 곁에 두고 못가으로 거니노니
이따금 서늘한 바람 향을 불어오도다 *
* 별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작인다
저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
* 청매(靑梅) 2
청매는 다문다문 피인 지 二十여 일
꽃은 다 져도 푸른 다대와 여의
그리고 싱동싱동한 향은 그저 남았다
靑梅는 아니 늙고 외롭지도 아니하다
푸른 가지엔 퍼린 움이 돋아난다
오늘쯤 파란 새들도 찾아올까 싶으다
* 청매(靑梅) 3
봉마다 방긋방긋 구슬보다 영롱(玲瓏)하다
낼 모레면 다 필 듯 벗들도 오라 하였다
진실로 너로 하여서 떠날 길도 더뎠다
대체 福이란 건 길고 짜를 뿐이다
夭니 壽니 함도 이걸 일컬음인데
짜르고 긴 그동안을 우리들은 산다 한다
오늘 아침에야 봉 하나이 벌어졌다
홀로 더불어 두어 잔을 마시고
좀먹은 古書를 내어 床머리에 펼쳤다 *
* 새벽
돋는 새벽빛에 窓살이 퍼러하다
白花藤 香은 상머리 떠돌고
꾀꼬리 울음은 잦아 여윈 잠도 잊었다
松花 누른 가루 개울로 흘러오고
돌담 한 모르에 시나대 새순 돋고
茶밭엔 茶잎이 나니 茶나 먹고 살을까 *
* 梅' 水仙 '蘭
零下 十五度의 大寒도 다 지내고
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
뜰앞의 梅花 봉오리도 볼록볼록 하고나
한잠 자고 나면 꿈만 시설스러웠다
이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
일깨어 손주와 함께 뛰고 놀고 하였다
한 盆 水仙은 농주를 지고 있고
여러 蘭과 蕙는 잎새만 퍼런데
호올로 병을 기울여 菊花酒를 마셨다 *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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