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세밑에 오는 눈 - 신경림

효림♡ 2008. 12. 3. 10:29

* 세밑에 오는 눈 - 신경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등과 가슴에 묻은 얼룩을 지우면서 
세상의 온갓 부끄러운 짓, 너저분한 곳을 덮으면서 
깨어진 것, 금간 것을 쓰다듬으면서 
파인 길, 골진 마당을 메우면서 
  
밝은 날 온 세상을 비칠 햇살 
더 하얗게 빛나지 않으면 어쩌나 
더 멀리 퍼지지 않으면 어쩌나 
솔나무 사이로 불어닥칠 바람 
더 싱그럽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창가에 흐린 불빛을 끌어안고 
우리들의 울음,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스스로 작은 울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서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어서 *
 

* 신경림시집[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랜덤하우스

 

* 눈 -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 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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