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별에게 묻다 - 고두현

효림♡ 2009. 4. 9. 08:35

* 별에게 묻다 -고두현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절벽에 빗금 치며 꽂히는 별빛  

좌선대 등뼈 끝으로  

새까만 숯막 타고 또 타서  

생애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  

그립다 그립다  

 

밤에 쓴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아침  

우체국에서 여기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 *

 

* 상생(相生)

그리움이 너무 깊어 연지에 닿으시면

제 마음 가득한 물결 그곳에

있습니다. 연잎이 아니 뵈면

목란배 묶어놓고 새벽빛 푸를 때까지

물 결에 머무소서. 이슬 맑은 바람 아래

부끄러이 가둔 꽃잎, 견디고 견디다가

향기진 봉오리 끝 터지는 그 소리를

아소 님만 혼자 들으소서. *

 

* 한여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 남으로 띄우는 편지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

 

* 떡 찌는 간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

 

* 만리포 사랑
당신 너무 보고 싶어
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
속살 같은
저 노을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바알갛게 젖 물리고
옷 벗는 것
보았습니다 *

 

* 빈자리

열네 살 봄 읍내 가는 완행버스
먼저 오른 어머니가 남들 못 앉게
먼지 닦는 시늉하며 빈 자리 막고 서서
더디 타는 날 향해 바삐 손짓할 때
빈 자리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아침저녁 학교에서 못이 박인 나는
못 본 척,못 들은 척
얼굴만 자꾸 화끈거렸는데
마흔 고개 붐비는 지하철
어쩌다 빈 자리 날 때마다
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
없는 먼지 털어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
괜찮다 괜찮다,아득한 땅속 길
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 치는
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
끝내 앉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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