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소월 시 모음

효림♡ 2009. 4. 22. 08:46

*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 꿈  

닭 개 짐승조차도 꿈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허하다, 봄날은 꿈꿀 때
내 몸이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 제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섧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 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 봄비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닯이 고운 비는 그어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 봄밤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는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옛낯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아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 꿈

꿈? 靈의 헤적임. 설움의 고향
울자, 내 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

 

* 낙천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 눈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임의 마음 *

 

* 꿈길

물구슬의 봄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거츠는 꿈

 

* 金잔디

잔디
잔디,금잔디
심심(深深)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임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

*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 가시나무

산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뻗어올랐소

 

산에는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 가선 혼잣몸이 홑옷자락은

하룻밤에 두세 번은 젖기도 했소

 

들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들 끝으로 뻗어나갔소

 

*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嶺)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온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 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 生과 死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듯도 한 일을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 못잊어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르겠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리까? *

 

*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 새벽 
낙엽(落葉)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섬푸레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東)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붉으스레 물 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中天)에 지새일 때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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