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 윤보영
산마루에 올라서니
바람이
떠나려고 합니다
서둘러
그대에게 보낼
편지 한통 적었습니다
산에서도
그대를 그리워 한다고
* 비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그대 찾아 나섭니다
그립다 못해
내 마음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 책갈피
책갈피 하나 샀습니다
오늘 꺼내 본
그대 생각이 어디쯤일까
표시해 두고 싶어서
* 꿈 속에 사는 요정
안 그래도 예쁜 당신
생각하면 더 고운 당신
늘 그리운 당신은
내 꿈속에 사는 요정
* 커피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 선물
사랑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말을 곱게 포장 했습니다
꿈속에서 만나면 그대에게 주기 위해
* 사랑하니까
무엇이든지 나누면 작아지는 게 이치지만
그대 그리움은 왜 자꾸 많아집니까?
아니 왜 더 깊어집니까?
* 마음의 입술
사랑이란 눈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보이는 마음이 부리는 요술
* 좋아하는 꽃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내 가슴에 활짝 핀 그대라는 꽃입니다
지지 않고 늘 피어 있는
* 호수
그대 보내고 난 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보였어도
호수에 담긴 물이 내 그리움인 줄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 그대 눈물
그대 눈물 한 방울은
내 가슴에 한 바가지 눈물이 되고
그대 눈물 한 줄기는
내 가슴에 한가득 냇물이 되어 흐릅니다
* 자전거 바퀴
앞으로 가면 가는 만큼 따라오고
물러서면 물러선 만큼 뒷걸음질치고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는
내 안에 머물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늘 나를 지켜주는 그대를 닮았군요
* 옛길에서
낮에 왔다가 그대 걷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싶어
밤에 다시 왔습니다
바작바작 발자국을 딛고
내 가슴속에서 나오는 그대
추억 속에 있었나 봅니다
* 라일락 향기
라일락 향기를
늘 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대 곁에 라일락 한 그루를 심어두고
그대 생각 할 때마다 향기가 묻어오게 하는 것―
* 노을
나는 아직 내 가슴을 태우던
노을을 기억합니다
그대 마음에서 옮겨 붙어 타들어 가던
* 그립다 보면
그대 생각 하다보면 꽃대에도 얼굴이 있고
나무 줄기에도 얼굴이 있고
그리워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얼굴로 보이나 봅니다
* 슬픈 영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는
그대를 만나다 깨는 꿈
* 내 안에
항아리처럼 생긴 내 안에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바다가 있고
이들을 다 담고도 남는 그대 그리움이 있고
* 바다
바다의 끝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네 그리움의 끝은 어디냐고 되묻네
바다가
* 갈대와 연못
그대가
갈대라 해도 괜찮고
그대가
연꽃이라 해도 좋아
나는, 어차피
그대를 담고 있는 연못이니까
* 생각할수록…
책장의 많은 책도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내 안의 그리움도 꺼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더 그리운 게 사랑이니까요
* 입속에 담긴 말
내 입속의 말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말을 되뇌입니다
* 마음의 홍수
비 오는 날에는 차 한 잔에도 홍수가 집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 첫눈
첫눈이 내립니다
얼른
눈부터 감았습니다
내 안의 그대 불러
함께 보고 싶어서
* 남겨둔 마음
그대 곁을 떠나도
마음은 남겨 두겠다 했지요
한세월이 지나도
그대가 늘 그리운 걸 보면
그대 곁에 남겨 둔 내 마음은
변함없나 봅니다
* 거울을 보다가 1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너였으면 했겠니
* 거울을 보다가 2
거울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이해해 줄 텐데
너이고 싶도록 보고 싶은 내 마음을
* 듣고 싶은 말
오랫동안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이유는
한순간만이라도 그대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너를 사랑해 이 소리면 더욱 좋겠지만
* 오솔길
오솔길이 외로우면 나뭇잎이 달래고
바람이 달래고 새소리가 달래지만
내 외로움은 그대 생각만이 달랠 수 있습니다
그대 때문에 외로워졌으니까요
* 윤보영시인
-1961년 경북 문경 출생
-[지구문학-1998.겨울호]신인상(동시부문)으로 등단
- 시집 [소금별 초록별][사기막골 이야기][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